813일 월요일 아침묵상-부정한 이방 여인

 

마가복음 7:24-30 (표준새번역)

24 예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셔서,

두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기를 바라셨으나,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곧바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수로보니게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시기를 예수께 간청하였다.

27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다."

28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아이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하였다.

29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서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고, 귀신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예수님 찾아와 간청하는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에게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다며

이방 여인의 부탁을 거절하셨습니다.

 

이방 여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에게

심한 굴욕감과 상처를 줄 수 있는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이방인들 역시 차별하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는 듯한

모욕적인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잘못된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개라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처럼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시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버리신 개라고

생각하신 것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기는

이방 여인의 겸손한 믿음을 보여주심으로

유대인들의 교만과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기에 초점을 두고 묵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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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모르게 두로 지역으로 가셨지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이

온 두로 지역에 퍼졌습니다.

 

소문을 들은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귀신 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 줄 것을 간청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은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만난 부정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나마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부정한 사람이었지만

같은 유대인들이었기에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크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로 지역에서 만난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 여인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마가복음 7:26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수로보니게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시기를

예수께 간청하였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을 소개하면서

그 여인의 이름에 대해선

아무런 소개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여인의 출신과 출생에 대해서만

자세하게 소개하였습니다.

 

이름보다 출신에 대해서만

소개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찾은 이 여인은

유대 여자가 아니라 이방 여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이 굳이

이방 여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찾은 여인은 이방 여자이니까

예수님께서 결코 만나서는 안 되는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는 장소는

두로 지역이었습니다.

 

두로라는 지역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주로 이방 상인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부정하게 여겨졌던 도시였습니다.

 

게다가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더러운(악한) 귀신 들린 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정한 이방인들의 더러운 땅 두로 지역에서,

부정한 이방 여인의 요청으로,

부정한 귀신들린 딸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이방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부정하다고 여기는

죄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과 이방 여인과의 만남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으며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야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얻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매우 당연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부정한 죄인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구원받는 일은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경한 생각이었습니다.

 

특별히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은

그 어떤 부정한 사람들보다 컸습니다.

 

예수님과 이방 여인과의 대화에서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어떻게 여겼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7:27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아이들은 유대인들을 뜻하고

개들은 이방인들을 뜻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도 다른 유대인들처럼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의 태도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중에는 이방인들을

개라고 부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을 비하하는 조센징,

중국 사람을 비하하는 짱개,

일본 사람을 비하하는 쪽바리와 같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인종차별적인 나쁜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에게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거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의 생각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기는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드러내심으로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편견을

고발하고 부끄럽게 하고 깨닫게 하려는

예수님의 방법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귀신 들린 딸을 치료를 부탁하는

이방 여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베풀 은혜는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제로는 이방 여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님의 구원이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도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음에도

기독교의 역사는 이교도들을 지옥의 땔감이라며

멸시하고 저주하고 칼과 창으로 억압했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이교도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지금도 여전히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편견을 뛰어넘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은

다른 종교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멸시하고 저주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숫자로 경제력으로

다른 종교문화를 무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입니다.

 

비록 다른 종교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기꺼이 도움을 베푸는 사랑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세상에 드러내는 바른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민족의 경계,

신분의 경계,

성별의 경계,

학벌의 경계,

빈부의 경계,

사상의 경계,

인종의 경계,

종교의 경계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경계와 편견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인간이 만든 경계와 편견을 뛰어넘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 다른 경계와 편견을 만드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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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