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일 화요 아침묵상-귀 먹고 말 더듬는 자

 

마가복음 7:31-37 (표준새번역, NIV)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32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3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얹었다.

34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 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려라"는 뜻이다.)

35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36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37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기를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하였다.

31 Then Jesus left the vicinity of Tyre and went through Sidon, down to the Sea of Galilee and into the region of the Decapolis.

32 There some people brought to him a man who was deaf and could hardly talk, and they begged him to place his hand on the man.

33 After he took him aside, away from the crowd, Jesus put his fingers into the man's ears. Then he spit and touched the man's tongue.

34 He looked up to heaven and with a deep sigh said to him, "Ephphatha!" (which means, "Be opened!").

35 At this, the man's ears were opened, his tongue was loosened and he began to speak plainly.

36 Jesus commanded them not to tell anyone. But the more he did so, the more they kept talking about it.

37 People were overwhelmed with amazement. "He has done everything well," they said. "He even makes the deaf hear and the mute speak."

 

 

병을 치유받기 위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온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치유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아마도

손을 얹어 병자를 치유하는 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흔히 행했던

치유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특별한 모습과 방법은

소위 사람들의 병을 치유한다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수를 남발하였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특별한 모습과 방법에 담겨진

성경의 메시지를 발견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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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치신 예수님께서는

두로 지역을 떠나

갈릴리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십니다.

 

마가복음은

갈릴리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시는

예수님의 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로 지방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을 통과하시고

갈릴리 바다 동편으로 오셨습니다.

 

마가복음이 자세하게 기록한

두로, 시돈, 데가볼리 지역은

주로 이방인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다니셨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 오시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귀가 먹었다는 것은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면

제대로 된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입으로 소리는 낼 수는 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상한 소리만 냅니다.

 

이처럼 귀먹은 사람들 대부분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려온 사람들은

환자에게 손을 얹어 고쳐줄 것을 부탁합니다.

 

마가복음 7: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환자에게 손을 얹는 것은

당시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반적인 종교적 치료 방법이었습니다.

 

환자에게 손을 얹는 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종교적 치유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종종 손을 얹어(안수하시어)

환자들의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손을 얹어(안수하여) 병을 고쳐 달라는

사람들의 부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환자의 병을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혼잡한 곳을 떠나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 혼자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따로 데려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따로 데려 가셨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하면

예수님의 인기와 명성은

더욱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병자를

아무도 없는 외딴 곳으로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실 때

어떻게 하며 가셨을까요?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셨을까요?

 

아니면, 나란히 옆에 서서

어깨에 손은 얹고 함께 걸어가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그 사람을 따로 데려가기 위해선

아마도 옆에 같이 서서

어깨에 손을 얹거나 손을 잡고

그 사람을 안내하며 가셨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

신체장애자는 부정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불치병 환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이런 유대 종교 문화에서

이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걸으며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누구도 이 사람을 놀림거리로 여기거나

이상하고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는

이 사람과 개인적인 교제를 가지셨습니다.

 

부정하고 저주받았다고 여기는

이 사람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행동은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메시지였습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다정한 모습과 세심한 배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당신은 저주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버려진 인생이 아닙니다.

당신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존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로 보여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그냥 도매금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남들에게 결코 말하지 못하는

나만의 은밀한 생각과 비밀을 아시며,

나만의 은밀한 아픔과 상처를 아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오십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우리 각자 각자의 이름을

부르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당시 유대 목자들은

지금 우리가 개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처럼

양들에게도 각각 이름을 만들어 주고

양들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듯이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어떻게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까?

 

요한복음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눈물을 흘리시며 비통해 하는 마음으로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시므로

죽음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처지 내 절망 내 아픔 내 눈물을 아시고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내게 다가오시면서 내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나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힘들고 절망적인 순간에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시는 분이시기에

내 인생의 아픔과 절망을 위로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존귀한 삶을 살기를

나보다 더 원하시는 분이시기에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친절과 세심한 배려로 사람을 섬기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게 하시고

우리의 아픔과 상처 난 마음을

서로 위로하고 고치는 예수님의 은혜가

신앙공동체를 통해 나타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