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수요일 아침묵상-예수님의 치유방법
마가복음 7:31-37 (개역개정, NIV)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 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 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환자에게 손을 얹는 것은
예수님 당시 가장 일반적인
종교적 치료 방법이었습니다.
환자에게 손을 얹어 기도하는
소위 안수기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종교적 치유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려온 사람들은
환자에게 손을 얹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부탁하지도 않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환자의 병을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생각했던 일반적인 치유 방법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환자의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독특한 치유방법을 통해
아픈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시는 법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공감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두고
오늘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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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시자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손을 얹어 병을 고쳐줄 것을 부탁합니다.
사람들의 부탁을 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람들이 부탁한대로
손을 얹어 안하지 않으셨습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병자를
사람들이 없는
외딴 곳으로 데려 가십니다.
사람들이 없는 외딴 곳으로
병자를 데려가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제껏 한 번도 볼 수 없던
특별한 방법으로 병자를 치료하십니다.
마가복음 7: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일부 성경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귀먹은 사람의 귀에 손가락을 넣고
말 못하는 사람의 혀에 침을 바르는 것은,
당시 주술사와 같은 사람들이
병자를 치료하던
흔한 치료방법이라고 합니다.
성경학자들의 주장처럼
귀에다 손가락을 집어넣고
혀에다 침을 바르는 것이
당시 흔히 있었던
민간 치료방법이라고 해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환자들을 고치셨습니까?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기거나
병이 나았다는 말씀의 선포만으로도
찾아온 환자들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심지어 귀신 들린 딸을 집에 두고는
엄마 혼자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귀신을 쫓아달라는 수보로니게 여인의 딸을
어떻게 치유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는
귀신이 이미 딸에게 나갔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29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에는
너무나 특이합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피해
따로 한적한 곳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양 귀에 댑니다.
침을 묻혀 그 사람의 혀에 댑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능력을 보면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료 하신 것일까요?
물론 사람마다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불행한 삶에
예수님 자신도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귀를
손수 만져주시고
혀가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혀에
침을 묻혀 손을 대심으로
촉각으로 느낌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신 것입니다.
비록 그 사람이 귀가 먹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기만 하면
그 사람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만져주셨습니다.
촉각으로 느끼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귀먹은 사람의 형편을 헤아리시고
세심하게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배워야 합니다.
누군가를 도우려고 할 때에도
내가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내 맘대로 내 방식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도와주는 것이기에 더더욱
도움을 받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고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내가 도와주니까
내 맘대로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랑이며 자기 과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부모님이나 가족을 잃은
감당하기 힘든 큰 슬픔을 당한 사람을 만나면
가장 좋은 위로의 방법은
백 마디의 말보다 손 한번
꼭 잡아주는 것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울면서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행동에서
우리가 깨닫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고통스런 현실과 상관없이
저 멀리 따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겪는 가장 힘든 고통의 순간에
나와 가장 가까이서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과
나란히 서서 함께 걸으셨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면서
우리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십니다.
더구나 우리의 고통스런 현실을 보고
마음 깊이 탄식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마가복음 7: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형편이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로 인해 우는 사람들을 보시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33-35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내가 눈물 흘릴 때
예수님도 같이 우십니다.
내가 고통으로 한숨 쉴 때
예수님도 나로 인해 탄식하십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보며
여러 사람들이 연민과 동정은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하고 말 하지 못하는 사람이
피부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탄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시고
사람이 겪는 고통에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처 입은 치유자로 부르셨습니다.
살면서 내가 겪어야 했던
상처와 아픔을 통해
비슷한 상처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까?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고통과 아픔처럼
깊이 공감하고 배려하고 탄식할 수 있을 때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위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 해
어떻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돕는 것인지를 배우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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