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일 목요 아침묵상-에바다

 

마가복음 7:31-37 (표준새번역)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32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3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얹었다.

34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려라"는 뜻이다.)

35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36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37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기를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이나 질병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이나 저주라고

함부로 언급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영적 폭력입니다.

 

영적 폭력은

상대방의 마음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으로

육체적 폭력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알량한 종교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영적 교훈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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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와서는

손을 얹어 병을 고쳐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부탁대로

손을 얹어 안수하지 않으셨습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는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고

혀에는 침을 바르시고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더니

이 사람을 향해 에바다 라는

단 한 마디만을 외치셨습니다.

 

에바다는

당시 중동 지역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통으로 사용하였던 아람어로서

열려라 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마가복음 7: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사람이

귀먹고 말 더듬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저주)하신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나

신체의 심각한 불구(장애)가 있는 경우

하나님의 저주나 징계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신체에 심각한 질병이나

예상치 못한 심각한 사건이나 사고가 생기면

무조건 하나님의 징계나 심판으로 여깁니다.

 

물론 우리에게 일어난 일 중에는

깨닫게 하고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의 징계로 일어난 일도

분명 있다고 믿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예상치 못한 불행한 사건을

하나님의 징계로 깨달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회개는

분명 지혜로운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에게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할

하나님의 징계라는 깨달음을

정작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일에만 지나치게 적극적입니다.

 

내 주변의 이웃에게

예상치 못한 재앙이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징계나 심판을 언급하며

함부로 남이 겪는 재앙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도 부족할 판에

함부로 하나님의 징계를 들먹이는 일은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는 영적폭력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져서

사람을 심판하려는 인간의 영적교만입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한국의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는

십일조 안하는 교인들은 암에 걸린다는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영적 공갈과 협박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일은 비단

그 교회 그 목사만의 일이 아닙니다.

 

너무도 많은 목사들과 교회들이

교인들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을

하나님의 저주나 징계라고 하며

교인들을 협박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욥기를 보면

남의 불행한 일에 대해 함부로

하나님의 저주나 징계를 언급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가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도 인정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신실함을 시기한 사탄은

욥으로 하여금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재앙과 불행과 고난을 겪게 했습니다.

 

욥에게 닥친

재앙과 불행과 고난을 지켜본

욥의 세 친구가 그에게 말합니다.

 

욥이 겪는 비참한 재앙과 불행과 고난은

욥이 하나님께 숨긴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와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욥에게 닥친 재앙과 불행과 고난을

위로하고 도와주어야 할 친구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욥을 비난하고 나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 대한 세 친구의 비난을

악한 일로 여기셨습니다.

 

욥기 42:7-8

주께서는 욥에게 말씀을 마치신 다음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분노한 것은,

너희가 나를 두고 말을 할 때에,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마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지고 가서,

너희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번제를 드려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용서하여 달라고 빌면,

내가 그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두고 말을 할 때에는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않고, 어리석게 말하였지만,

내가 그대로 갚지는 않을 것이다."

 

욥기의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의 겪는 재앙과 불행과 고난을

하나님이 주신 징계요 저주라고 말함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뜻을 함부로 왜곡하는

매우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그대로

갚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그대로 갚으시는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우리가 온전하고 의롭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사랑과 용서로 우리를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방법은

저주와 심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방법은

한없는 사랑과 용서이십니다.

불행한 일을 겪는 사람에 대해

그 사람에게는 우리와는 다른

더 큰 죄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한적한 곳으로 따로 데려가셔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오랫동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며

불행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불쌍한 사람에 대한 탄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고통스런 현실을 보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계십니다.

 

저렇게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하시며

지금도 여전히 탄식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에바다 단 한 마디를 말씀하십니다.

 

"에바다"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이 선포되자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귀가 열리고 입이 풀어졌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에 빠져 살던 사람이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신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된 것입니다.

 

에바다!

예수님은 파괴된 것을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막힌 것을 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묶인 것을 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막히고 닫힌 것을 열어주시는

예수님의 에바다 은혜가

막히고 닫힌 것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