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금요일 아침묵상-에바다2
마가복음 7:31-37 (개역개정)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환자를 데려온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귀 먹고 말 더듬는 자의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기록한 마가는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긍휼하게 여기시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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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예수님께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손을 얹어 병을 고쳐줄 것을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는
귀에 손을 넣으시고 혀에 침을 바르시고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에바다 단 한 마디 말씀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7: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님의 선포로
오랫동안 고통에 빠져 살던 사람이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신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귀 먹고 말 못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동정하거나
연민하신 것이 아닙니다.
값싼 동정이나 연민은
오히려 상대방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불행한 삶에 대해
아주 깊은 탄식을 하신 거예요.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하시면서
상대방과 동일시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는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병자를 치유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마음 깊이 상대방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배워야 합니다.
병자들의 머리에 안수하거나
병자들의 몸을 때리는 것으로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으로는
절대로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통 받고 절망하는 이웃의 삶에
그들의 삶이 열리는 에바다의 은혜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마음 깊이 진심으로
이웃의 고통에 공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가 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의사에게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인자하셨던 할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그 날부터 난폭해 지셨습니다.
식구들에게도 욕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욕을 퍼붓고,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간호원, 의사들에게도
난폭하게 대하기 시작했어요.
할아버지를 진정시키고 돕기 위해
옛날 친구들이 이모저모로 노력했지만
친구들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소리를 내서 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전문적인 카운슬러를
할아버지에게 들여보내도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살던 동네
이웃에 살던 꼬마가,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할아버지를 보기위해
병원까지 찾아 왔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카운슬러도
막무가내로 쫓아내는 할아버지가
동네 꼬마를 만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할아버지 얼굴이라도 보고 인사라도 하라며
동네 꼬마를 병실에 들여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방 쫓겨나올 것 같았던 동네 꼬마가
삼십분이 넘도록
병실에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마침내
동네 꼬마는 병실에서 나왔고
꼬마를 만난 후로
할아버지가 크게 변하셨습니다.
태도가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사람들도 만나고 얘기도 하고
이전의 할아버지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변하신 것이 너무도 이상했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났던 동네 꼬마를
찾아가서는 물어 보았습니다.
“꼬마야, 할아버지하고 무슨 얘기를 했니?”
그러자 그 동네 꼬마는
“아무 얘기 하지 않았는데요.” 대답했습니다.
가족들은 더욱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럼 삼십분이 넘도록
할아버지하고 무엇을 했니?“
어린 꼬마가 대답했습니다.
'저요, 할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할아버지랑 같이 울었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함께 아픔을 느낄 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까?
마가복음 7: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이 사람이
듣지 못하고 말 못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 도 아닙니다.
악한 권세가 매어 놓은 것입니다.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는
마가복음의 표현을 보면
어떤 권세와 힘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이 사람의 귀를 막고 혀를 묶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악한 권세와 힘에 의해
귀가 막히고 혀가 묶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세상의 달콤한 유혹은 들으면서도
정작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못합니다.
가지 말라는 길로만 가고,
하지 말라는 일만 하게 됩니다.
죄의 권세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찬양해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전해야 할 사람들이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혀가 맺혀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권세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웃어야 할 사람이 찡그리고 있고,
승리해야 할 사람이 패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고
앞으로 나가야 할 사람이
세상을 방황하고 있습니다.
담대해야 할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이겨야 할 사람이
정작 죄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현실을 보시고
지금도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묶어두려고 하는
모든 악한 권세와 종교적 억압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에바다!
우리를 묶어 두려고 하는
모든 악한 권세로부터,
막힌 것을 열어주시고
맺힌 것을 풀어주시려는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에바다의 은혜가
아침묵상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막힌 것을 열어주시고
맺힌 것을 풀어주시는 에바다의 은혜가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타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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