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일 금요 아침묵상-헤롯의 누룩

 

마가복음 8:14-16 (표준새번역)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 오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그들이 탄 배 안에는 빵이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16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리기를 "우리에게 빵이 없어서 그러시는가 보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이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은

마태복음에만 나오고 있으며

헤롯의 누룩은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복음서마다 누룩에 대해

서로 다른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는

복음서 마다 강조하려고 하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가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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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묵상에서는

마가복음의 관점에서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헤롯의 누룩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헤롯의 누룩은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독특한 표현입니다.

 

마가복음에서 헤롯의 누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기 위해선

마가복음에 기록된

헤롯의 이야기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헤롯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된 곳은

마가복음 6장이 전부입니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헤롯에 대한 이야기 일부분입니다.

 

마가복음 6:14-16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헤롯왕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제각각 여러 가지로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 했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엘리야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옛 선지자들과 같은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여러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여겼습니다.

 

마가복음은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인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6:17~29 참고)

 

당시 헤롯왕은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헤로디아와의 정략결혼을 비판하는

세례 요한을 매우 싫어하면서도

그를 함부로 여기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6: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 두려워하였지만

결국 헤롯왕은 정략 결혼한

자신의 아내 헤로디아의 꾐에 빠져

세례 요한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마가복음은

선지자로 존경받았던 세례 요한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

 

장차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헤롯의 누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헤롯은 갈릴리 지역에 떠도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관련된 소문을 듣고는

예수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세례 요한의 부활로 여긴 것입니다.

 

헤롯은 왜 이렇게 생각한 것일까요?

 

아마도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고 나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불안해했을 것입니다.

 

심각한 죄책감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한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헤롯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의 부활로 여긴 것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부활했다고 여길 정도로

세례 요한을 죽인 일에 대해

깊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헤롯이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까지

세례 요한을 죽인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헤롯의 탐욕이었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헤롯의 탐욕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겼던 세례 요한조차

죽이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믿었다면

자신의 탐욕을 비판하는

세례 요한의 목소리를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헤롯은

세례 요한의 목소리를 따르기 보다는

세례 요한의 목을 자름으로

그의 입을 막아 버린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세례 요한의 목을 자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아예 원천적으로 막아 버린 것입니다.

 

권력과 기득권에 대한 헤롯의 욕심은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세례 요한의 외침에

귀 기울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더 이상

세례 요한의 외침을 듣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목숨까지도

빼앗았습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헤롯의 탐욕과 욕심은

하나님의 선지자 세례 요한을 죽이게 만들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부활한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권력과 기득권에 대한

헤롯의 욕심과 탐욕은

예수님이 누군지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이 말하는

헤롯의 누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이나 기득권

또는 자신들의 욕심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메시아로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헤롯의 누룩인 것입니다.

 

마가복음이 언급하고 있는

바리새인의 누룩이나 헤롯의 누룩은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비난하고 시험하였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헤롯과 그의 일당들도

바리새파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정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세례 요한의 목숨을 빼앗았던 것처럼

바리새인과 합심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함했습니다.

마가복음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 하니라.

 

이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인간들의 욕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불순종하거나 거절하게 만듭니다.

 

더 높은 권세와 더 많은 물질에 대한

모든 인간들의 욕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도 교인들에게 퍼지고 있는

그래서 교회를 끊임없이 망치고 있는

헤롯의 누룩입니다.

 

한주간도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려고

애쓰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 권세와 물질에 대한 욕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깨닫게 하는

우리의 마음을 닫아버린다는 것을

헤롯의 누룩을 통해 배우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