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일 목요 아침묵상-벳새다 눈먼 사람

 

마가복음 8:22-26 (표준새번역, NIV)

22 그리고 그들은 벳새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대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23 예수께서 눈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두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으시고서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 사람이 쳐다보고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하였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런 다음에, 그가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6 예수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마을로 들어가지 말아라." 하셨다.

22 They came to Bethsaida, and some people brought a blind man and begged Jesus to touch him.

23 He took the blind man by the hand and led him outside the village. When he had spit on the man's eyes and put his hands on him, Jesus asked, "Do you see anything?"

24 He looked up and said, "I see people; they look like trees walking around."

25 Once more Jesus put his hands on the man's eyes. Then his eyes were opened, his sight was restored, and he saw everything clearly.

26 Jesus sent him home, saying, "Don't go into the village."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은

단순히 신비로운 초자연적 현상으로서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에는

이적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적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보다는

신비롭게 보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에만

모든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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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벳새다라는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벳새다 지역에 가시자

사람들이 눈 먼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손을 얹어 고쳐줄 것을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눈 먼 사람의 손을 붙잡고는

사람들이 없는 마을 바깥으로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눈에 침을 바르고는 손을 얹어서

눈을 고쳐주십니다.

 

벳새다 지역의

눈 먼 사람을 고치신 사건은

마가복음 731절부터 37절에 나오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신 사건과

매우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려온 것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눈 먼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손을 얹어 장애를 고쳐 줄 것을 부탁한 것처럼,

 

눈 먼 사람에게도

손을 얹어 장애를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사람들이 없는

외딴 곳으로 데려 가신 것처럼,

 

눈 먼 사람을

사람들이 없는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에 손가락을 넣고 혀에 침을 발라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장애를 고치신 것처럼,

 

눈 먼 사람의 눈에 침을 발라

눈 먼 사람의 장애를 고치십니다.

 

마가복음 7장에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신 사건이나

마가복음 8장에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신 사건은

단순한 치유의 이적이 아닙니다.

 

지난 아침묵상에서 자세하게 소개했듯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은

단순히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은

이적을 통해 나타내고 깨닫길 원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숨겨진 표적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의 이적을

단순하게 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다는

신비한 사건에만 초점을 두면 안 됩니다.

 

치유의 사건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신 사건은

단순하게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아 병을 고친 것을

알려주는 이적이 아닙니다.

 

이방여인의 딸을 고쳐주심으로

악한 권세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도 임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입니다.

 

마가복음 7장에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신 이적이나

마가복음 8장에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신 이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이적의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불치의 장애를 고쳐주신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이 아닙니다.

 

이 두 이적의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길 원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있는

표적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표적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7장과 8장에 등장하는

귀 먹고, 말 더듬고, 눈 멀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는 데 사용하는

전형적인(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이사야 43: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예레미야 5: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무슨 뜻입니까?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은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과

눈 먼 사람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고

눈 먼 사람을 고치신 것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장차

제자들과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인의 눈을 밝게 하시며

못 듣는 사람의 귀를 열리게 하시며

저는 사람의 발을 뛰게 하시며

말 못하는 자의 혀로 노래하도록

고치신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3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마가복음은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고

눈 먼 사람을 고치시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을

이루시는 분으로, 성취하시는 분으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고

눈 먼 사람을 고치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고치실 것입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눈앞의 이익과 욕심에만 사로잡혀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처럼

마땅히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눈앞의 이익과 욕심에만 사로잡혀

마땅히 고백하고 찬양하고 전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합니다.

 

눈앞의 이익과 욕심에만 사로잡혀

마땅히 보아야 하는

하나님 나라와 이웃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정작 예수님을 잘 몰랐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고는 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셨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선

눈 먼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 뜻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내 나라만을 원했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선

무지할 정도로 무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역시

눈 먼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처지가 절망적일지라도

여전히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눈 먼 사람을 고치셨듯이

우리 역시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욕심에만 눈 먼 우리를 고치셔서

우리의 눈으로 하여금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벳새다의 눈 먼 사람을 고치신 것처럼

욕심과 이기심으로 눈 먼 우리의 영안을 고쳐주셔서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시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