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금요일 아침묵상-이적에 숨겨진 표적
마가복음 8:22-26 (표준새번역, NIV)
22 그리고 그들은 벳새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대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23 예수께서 눈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두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으시고서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 사람이 쳐다보고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하였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런 다음에, 그가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6 예수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마을로 들어가지 말아라." 하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miracle)이나 이적(wonder)은
단순히 신비하고 놀라운
초자연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miracle)이나 이적(wonder)은
사람들이 깨닫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는 표적입니다.
벳새다 지역에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하게
예수님께서 눈 먼 사람을 안수하셔서
고치셨다는 이적이 전부가 아닙니다.
벳새다 지역의 눈 먼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치유 이적에는
전하고자 하시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
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표적을 통해
전하고자 하신
예수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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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사람을 고치는
예수님의 치유 방법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치유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데려온 눈 먼 사람을
단 한 번에 치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눈 먼 사람의 눈에
침을 바르고는 안수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눈 먼 사람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습니다.
눈 먼 사람이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보이기는 하는데
나무들이 걸어가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인다고 대답합니다.
보이기는 보이는 데
사람들이 나무로 보일 정도로
매우 흐릿하게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눈 먼 사람의 눈에 안수하셨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눈 먼 사람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서
이처럼 한 번에 온전히 치유되지 않고
두 번에 걸쳐 치유가 된 것은
아마도 이것이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단 한 번으로는
눈 먼 사람의 장애를 고치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환자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두 번에 걸쳐서 안수를 받아야만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조차도
단 한 번의 말씀으로 살리신 예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
눈 먼 사람을 한 번에 고치지 못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석입니다.
환자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한 번에 고칠 수 없었다는 해석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해석입니다.
앞서도 설명을 드렸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과 이적은
하나님의 뜻과 계시가 있는 표적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두 번의 걸쳐 안수를 하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에 걸친 예수님의 치유와
눈 먼 사람의 치유과정은
제자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 먼 사람에게
첫 번째 안수하셨을 때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제자들의 영적상태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자신들이 따라다니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몰랐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르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멋대로 오해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듣고도
빵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책망한다고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가르침조차
제멋대로 오해하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는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비록 제자들이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웠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 먼 사람에게
침을 바르고 안수하였지만
희미하게 보인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영적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제자들만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었던
수많은 사람들,
예수님의 치유의 이적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감시하였던 바리새인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과 친인척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가르침을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침을 바르고 안수하였지만
희미하게 보인다고 고백하는 눈 먼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손을 얹어 안수하셨습니다.
마침내 희미하게 보이던 것을
이제는 똑똑하게 보이게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25
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런 다음에, 그가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눈 먼 사람에게 다시 손을 얹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똑똑히 보이도록 고치신 이적은,
예수님에 대해 희미하게 아는 제자들을
다시 가르쳐서 제대로 알도록 고치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에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당신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할 것임을
제자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서 가르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앞에서 잡혀가고
고난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비로소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지만
그 의미는 사람마다 제각각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냐, 그릇된 믿음이냐,
살아있는 믿음이냐, 죽은 믿음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아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예수님이 이루시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면,
예수님의 주변에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던 군중들처럼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반하며 떠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예수님이 이루시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외면하였던 제자들처럼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언제든지
예수님의 뜻과 말씀을
자신들의 편리와 이익에 맞게
제멋대로 왜곡할 수 있는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믿음이 되기 위해선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이 가르쳐준 대로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을 자랑하기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에 대해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예수님의 손과 발로 하셨던 섬김의 삶을
우리의 손과 발이 그대로 따라할 수 있도록
배우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도 삶의 현장에서 수고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시므로
새 힘과 능력을 얻는 주일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매일같이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고 배워가고 닮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