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일 월요 아침묵상-예수님의 변화

 

마가복음 9:2-4 (표준새번역, NIV)

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한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나누었다.

2 After six days Jesus took Peter, James and John with him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where they were all alone. There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3 His clothes became dazzling white, whiter than anyone in the world could bleach them.

4 And there appeared before them Elijah and Moses, who were talking with Jesus.

 

 

마가복음은

주는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사건을 중심으로

전반부(1-8)와 후반부(9-16)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1-8)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예수님의 다양한 사역과 이적 말씀 등으로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질문에 대한

마가복음 전반부의 결론은

예수님은 그리스도(메시아)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마가복음의 후반부(9-16)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런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제자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후반부에서

예수님은 반복하여 말씀하시길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과,

다시 살아나실(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후에야

비로소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바로

자신들이 따라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십자가의 길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앞서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마가복음 후반부가

가르쳐 주고 있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 대해

가르쳐주는 마가복음 후반부의 첫 시작은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변화산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도대체 왜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변화산 사건으로

마가복음의 후반부를 시작하였는지

이것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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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신비한 광채()이 나는 모습으로

변화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셨다고 해서

변화산 사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에게

영광을 나타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세 제자들에게

신적 영광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들 앞에서

인간의 베일을 벗으시고

빛과 광채가 나는 신적인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옷에서

빛과 광채가 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 보이신 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변화산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지금까지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고백을 하자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장차 가셔야 할 길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장차 그리스도가 가실 길은

성공과 영광의 길이 아니라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십자가의 길 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과 찬양을 받으며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 하시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단지 베드로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 대부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각하고 기대한 길을 가시지 않고

정반대의 길을 가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는

강력하게 항의하며

예수님이 가시려는 길을 막아섰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는 메시아에 대한

베드로와 유대인들의 믿음(생각)으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체계로는

고난과 십자가와 죽음은

하나님께서 포기하고 벌주시려는

사람만이 받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고난과 십자가와 죽음은

결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가실 길이 아니라 여겼습니다.

 

고난과 십자가와 죽음은

하나님께서 외면한,

하나님께서 고개를 돌리신,

하나님이 주시는 징벌이자 심판이지

결코 구원의 사건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초대교회 공동체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비록 초대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고 믿었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유혹을

완전히 떨쳐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십자가로 인한 구원에 대해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처럼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3-24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되,

십자가에 달리신 분으로 전합니다.

이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유대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메시아가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은

매우 거리끼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믿음으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려 죽는 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버리신 결과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신앙방식으로는

십자가의 죽음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의 증거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려는 것을 막아선

베드로와 두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세상의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와 엘리야 선지자가 나타나서는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십니다.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마가복음 9:7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 모든 신비로운 사건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장차 겪으실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결과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거짓 메시아

가짜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장차 겪으실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는,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부와 권세와 성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

그리고 옳은 일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주저(거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증명하는 유일한 길은

세상은 절대로 줄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