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일 화요 아침묵상-예수님의 변화2

 

마가복음 9:5-8 (개역개정, NIV)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5 Peter said to Jesus, "Rabbi,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put up three shelters--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6 (He did not know what to say, they were so frightened.)

7 Then a cloud appeared and enveloped them, and a voice came from the cloud: "This is my Son, whom I love. Listen to him!"

8 Suddenly, when they looked around, they no longer saw anyone with them except Jesus.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세상의 질서와 방식을 뛰어넘는

신비한 체험을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와 삶을 위해

믿음의 용기를 내기보다는

신비한 체험에만 사로잡혀

체험에만 머무를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신비한 체험에만 사로잡혀

신비한 일에만 빠져 살아갑니다.

 

마치 베드로가

신비로운 모습으로 변한 예수님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를 보고는

초막 셋을 짓고는

산에서 살려고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신비한 체험의 본질은

신비한 체험 자체가 아니라

신비한 체험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삶에 대한

도전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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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상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신비한 광채()가 나는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변화하셨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사건을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셨다고 해서

변화산 사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더니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양편으로 나타나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광경을 본 베드로는

너무나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여기에 계속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천막을 세 개 짓고

여기서 살자고 합니다.

 

변화산 사건에서

특별히 주목해서 살펴볼 사실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모세와 엘리야였을까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가르쳐주기 위한

매우 중요한 상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을 듭니다.


그런데 변화산에서

예수님에게 나타난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던 지도자로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율법을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이라고 하거나

모세의 율법이라고 부릅니다.

 

엘리야는

구약성경에 등장했던

수많은 선지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모세처럼

시내산(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대면하였던(만났던)

영적체험이 있었던 선지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모세가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상징하는 엘리야가

신비로운 모습으로 변하신

예수님에게 나타난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만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깨뜨린(어긴)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뜨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율법의 완성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여러 예언자들이 전해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예언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예언서들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초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신비로운 모습으로 변하시는 산 위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증명해 보이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과 함께

하늘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이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베드로와 함께 있던 야고보와 요한을

흥분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초막을 짓고는

여기에 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한 것은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죽었던 믿음의 영웅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의

유일한 초점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집니다.

 

마가복음 9:8

그들이 바로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므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는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 했고

마침내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선지자를 상징하는 엘리야는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신비한 광채도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도전이 무엇입니까?

 

기독교 신앙을 통해

여러 가지 체험을 경험할 수 있지만

체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체험에 매달리면 안 됩니다.

체험은 단순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영적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신비한 체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졌지만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은

하늘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예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선한 목자라고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진리의 길이라고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는 길이며

최후의 영광을 누리는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오늘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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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