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금요일 아침묵상-인간의 완악한 마음
마가복음 10:5 (표준새번역, NIV)
5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이 계명을 써서 너희에게 준 것이다.
5 "It was because your hearts were hard that Moses wrote you this law," Jesus replied.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서로 도우며 살아가도록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완악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아주 오랜 역사로부터
심지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힘이 있고 돈이 있는 남자들은 여자들을
자신들의 사적 소유물로 여겨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종이나 다름없었고,
남편들은 아내가 마음에 안 들면
아무런 절차도 없이 쉽게 버렸습니다.
인간의 완악함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쉽게 버리지 못하도록,
함부로 아내를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모세를 통해 이혼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모세의 계명이전에는
이혼증서를 써주지 않고도
아내를 마음대로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혼증서를 쓰게 함으로
아내를 버리는 것을 어렵게 했습니다.
아내를 버리려면
이혼증서를 써주어야 하는
모세의 이혼 계명은
이혼을 쉽게 하기 위해서나
이혼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남자들의 완악함으로 인해
남편들에게 내버려진 여자는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회의 가장 연약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사회의 가장 약자로 전락하는
여성들을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신 계명이
이혼증서를 써주어
아내와 헤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혼증서를 가진 여성은
다시 결혼하는 것이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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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기 위해
묻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해서는
예수님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려는
악한 의도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역으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되묻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대답합니다.
마가복음 10:4
그들은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혼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이혼증서만 써주기만 하면
남편은 언제라도 아내를 버릴 수 있다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의
모세의 율법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이혼에 관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잘못된 해석이며 적용이었습니다.
모세의 이혼 계명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려는
인간(특별히 남편들)의
완악한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
여자(아내)들을 보호하기 지켜주기 위한
일종의 차선책입니다.
율법의 이혼 계명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부당한 이혼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이혼을 최대한 막기 위한 것이
모세의 이혼 계명에 담겨진
하나님의 진짜 의도이며 뜻입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이혼 계명을 제멋대로 이용하여
아내에게 이혼증서만 써주기만 하면
언제라도 남편이 아내를 버릴 수 있다고
남자들의 죄를 합리화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지적하신
인간들의 완악한 마음입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제멋대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 시키려는 것,
이것이야 말로 그 어떤 죄와도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완악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단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사람의 완악한 마음이란
단순히 나쁜 일을 한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사람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지극히 본질적인 사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율법, 은혜, 사랑, 말씀, 자유 등
놀라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완악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선물들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말씀, 은혜, 사랑, 자유,
이성과 같은 것을
죄를 짓고 더 큰 악을 행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가치는 자유입니다.
성경에서 자유는
인간의 구원을 상징하고 의미하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참된 구원은 속박과 억압이 아니라
모든 거짓된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신앙생활의 특정한 형식들에 대해서
강요하거나 강제적으로 시행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의 대부분을
각자의 양심과 자유와 신앙에 맡깁니다.
그런데 우리교회가 추구하는 자유에는
분명히 구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추구하는 자유는
신앙대로 살아가려는 자발적인 자유이지
제멋대로, 욕심대로, 본성대로 살아가려는
방종이 결코 아닙니다.
‘잔소리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해라’는
자녀에게 하는 부모의 권면이
자녀들에게 제멋대로 살라는 말인가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네 인생 네가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네가 잘 알 것이니,
스스로 알아서 누구보다 더 잘 살라“는
부모의 간절한 심정에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교회가 추구하는 자유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자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참된 구원의 의미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자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자유를
보다 더 신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은
완악한 일이 됩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심판과 저주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강요하고 강제(협박)할 때는
억지로라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종교적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주면 그 자유를 가지고
더욱 신실한 삶을 살기 보다는
아무런 찔림조차 없이 방종 하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진짜 믿음의 사람은
심판과 저주의 말씀으로 강요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가지고
그 누구보다 더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신앙생활이
강요와 강제 두려움과 공포에 의해서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실패,
유대인들의 실패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은혜로 주신 율법을
오히려 죄악을 저지르는 데 사용합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오히려 자신들이 죄를 합리화 하는 용도로,
교묘하고 악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이혼에 관한 계명은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사회적 약자인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간곡한 뜻이
담겨있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완악한 마음은
약자를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오히려 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탄식하신
완악한 인간들의 마음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다는 하는
종교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람다운 삶을 위해 주신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자유를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는 데
사용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에
오늘도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