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수요일 아침묵상-무화과나무 저주사건에 대한 오해
마가복음 11:12-14 (새번역, NIV)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12 The next day as they were leaving Bethany, Jesus was hungry.
13 Seeing in the distance a fig tree in leaf, he went to find out if it had any fruit. When he reached it, he found nothing but leaves, because 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14 Then he said to the tree, "May no one ever eat fruit from you again." And his disciples heard him say it.
예수님께서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시던 중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는
이제부터 영원히 이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저주대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하루 만에 뿌리째 말라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만 이해하여
예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열매 맺지 못하는 성전신앙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메타포로 말씀하신 것을
메타포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에 얽히
교회와 학자들의 잘못된 해석을 통해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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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서 하루 밤을 지내시고
다음날 아침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셨습니다.
이른 아침 베다니를 나섰기에
배가 고프셨는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고는
열매를 따기 위해 나무에 다가가셨습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열매를 찾아보았지만
잎사귀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잎사귀만 무성하지
열매는 하나도 없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합니다.
마가복음 11: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었던 이유를
무화과 열매가 열릴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핏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읽으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하나도 없는 것은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애꿎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또한 이 사건은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 기사 가운데
유일하게 이 사건만이
파괴적인 이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은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고
배고픈 사람을 먹이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죽어 가는 사람을 고치시고
귀신에 들려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 사건은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 가운데 유일하게
살리는 이적이 아니라
죽이는 이적이었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저자이며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던
영국의 작가 버트란트 러셀(Bertrant Russell)은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 때문에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되어
믿음을 가지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의 성인으로 알려진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박사도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혼란한 가운데
즉 심리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때 일어났던
비정상적인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의 사건과
예수님의 저주하신 대로
무화과나무가 하루 밤 사이에
뿌리 채 말라버린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에 대한
모든 잘못된 해석들은
이스라엘의 특이한 기후에서 열리는
무화과나무와 그 열매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벌어진 오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스라엘 기후에서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어떻게 열리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열매를 찾았던 예수님의 행동을
제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자들이 신비하게 여긴 것은
예수님께서 저주한 무화과나무가
하루 밤사이에 말라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11: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유대 땅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는
일 년에 두 번에 걸쳐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봄에도 열매가 맺히고
가을에도 열매가 맺히는데,
완전히 익어서 먹기에 좋은 열매는
가을에 맺히는 열매입니다.
봄에 열리는 무화과 열매를
히브리어로 ‘비쿠라’라고 했으며
가을에 열리는 무화과 열매는
히브리어로 ‘테에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시기라고 하면
가장 맛있고 많은 열매가 맺히는
가을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게서
열매를 찾는 시기는
유월절 전후이니까 계절로는 봄입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이 기록한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다’라는 말씀은
가장 맛있는 열매를 딸 수 있는
가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서 찾은 열매는
가을에 열리는 무화과 열매가 아니라
봄에 열리는 작은 무화과 열매입니다.
가을에 무화과 열매가 열리기 전에
봄에 열리는 작은 무화과 열매는
가을에 열리는 열매에 비해
아주 작고 맛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나
여행 중에 있는 사람들이 배가 고플 때
굶주림을 해결하는 방도로
봄에 열리는 무화과 열매를 먹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게서 찾은 열매는
가을에 열리는 크고 맛있는
‘테에나’라는 무화과 열매가 아니라
봄에 열리는
작고 맛도 없는 ‘비쿠라’라는 열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게서
봄에 열리는 열매를 찾았지만
무화과나무에서
아무런 열매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향해 저주하시길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의문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비록 봄에는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가을에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영원히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다고
저주하신 것일까요?
왜냐하면
“비쿠라”라는 봄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테에나”라는 가을 열매도
결코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봄에 얼마나 많은 열매가 열렸는가에 따라
가을에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무화과나무가
봄에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면
가을에도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열매를 찾았던 무화과나무는
비록 무화과열매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가을은 아니었지만, 가을이 되어도
열매를 전혀 맺을 수 없는 쓸모없는 나무로
이미 판정이 난 것입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에서 봄은 우기입니다.
충분하게 내리는 비로 말미암아
잎이 풍성해지고
가을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봄 열매가 열리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는
우기라는 가장 좋은 조건에서도
그저 잎사귀만 무성할 뿐이지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한
봄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봄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은
가을에도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을 상징합니다.
결국 이 무화과나무는
비록 잎은 무성할지 모르지만
땔감으로 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죽은 나무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무화과나무는 저주를 받았고
뿌리째 말라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이스라엘이라는 지리, 기후,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해석하게 되면
예수님의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만 해당하는
성경해석의 원리만은 아닙니다.
성경의 특정한 사건을 해석할 때
단순히 기록된 문자에만 의존하여 해석하면
성경이 본래 의도하는 것에서 벗어나
성경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도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성경의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말씀이라는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문자라는 그릇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읽는 지혜를 주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