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목요일 아침묵상-무화과나무 저주사건에 숨겨진 메시지
마가복음 11:12-14 (표준새번역, NIV)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12 The next day as they were leaving Bethany, Jesus was hungry.
13 Seeing in the distance a fig tree in leaf, he went to find out if it had any fruit. When he reached it, he found nothing but leaves, because 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14 Then he said to the tree, "May no one ever eat fruit from you again." And his disciples heard him say it.
어제 아침묵상에서는
유대 지역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여
무화과나무를 향한 예수님의 저주를
생각해 보고 해석해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묵상에서는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 숨겨진
영적인 상징이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반복하여 설명을 드리지만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단순히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한 것이 아닙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통해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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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주한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했지
열매는 하나도 없는 나무였습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는 것은
예수님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 종교의 현실과 실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무화과나무에 대한 예수님의 저주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랐다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다시 소생할 수 없어
이제는 불을 피우는 땔감으로 밖에는
쓸데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신앙이
더 이상 회생이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더 나아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베풀던 요한이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3:7-10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마라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가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세례 요한은
열매가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대단히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은
지금 식으로 표현하자면
매우 상스런 욕설입니다.
세례 요한이 욕설을 할 만큼
당시 이스라엘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후손)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인데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것만으로
결코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신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도끼로 찍어 불에 태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에 알맞은 열매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너무나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를 잘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회개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무엇입니까?
회개를 단순히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정도로만 여깁니다.
카톨릭 교회는
사제(신부)에게 고해성사하고
사제를 통해 죄를 용서받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개신교회는 기도로
하나님께 자신이 지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을 회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회개가 아닙니다.
자신이 지은 죄나 잘못을
사제나 하나님께 말하는 것은
단지 죄를 고백하는 것이지
이것을 회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개란 입술의 고백과 함께
태도와 행동의 변화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죄를 매주일 반복하여 저지르며
주일마다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만 한다고
내가 지은 죄가 용서를 받는 것도 아니며
회개를 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에 알맞은 열매가 무엇이냐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합니다.
누가복음 3: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가 세례를 받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자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누가복음 3:13
요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마라라.
군인들이 세례를 받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자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누가복음 3:14
요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 고발을 하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해라.
이것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입니다.
세례 요한이 가르쳐 주신 회개는
지극히 일상적인 자신의 삶에서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도끼로 찍어 불에 태우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다가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도
세례 요한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회개의 열매라고는 없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 종교를
더 이상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엄중히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는
겉으로 보기에 잎이 무성해서
열매도 많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가니
잎만 무성했지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무성한 잎이
무화과 열매가 없는 것을 감추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합니까?
예루살렘 성전의 화려한 건축물과
성전에서 행해지는 다양하고 엄숙한 제사는
정작 저들의 신앙에는
열매가 하나도 없음을 감추는
잎만 무성한 종교예식에 불과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환전상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물을 가지고 돈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는커녕
오히려 성전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 역시
세례 요한의 경고나
예수님의 경고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없음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매 없음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거늘
크고 화려한 예배당 건축물,
웅장하고 장엄한 종교 예식,
세련되고 그럴듯한 각종 종교 프로그램 등으로
열매 없음을 감추려고만 합니다.
정말 우리가 맺어야 하는
신앙의 열매,
회개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세상 방식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려고
삶의 방식과 태도와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입으로만 말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과 삶의 변화로 말미암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크리스천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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