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말에 중단하였던
자유교회 아침묵상을 다시 시작합니다.
자유교회 아침묵상은
성경말씀을 좀 더 깊이 묵상하므로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혹시 자유교회 아침묵상이
본인의 신앙관과 맞지 않으시거나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언제라도 이 단톡방에서 나가시면 됩니다.
또한 다른 분과 함께
아침묵상을 나누고 싶은 분이 있으면
누구라도 이 단톡방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9년 새해에도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깨닫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1월 7일 월요일 아침묵상-신앙공동체
고린도전서 12:25-27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1Cor.12:25-27 so that there should be no division in the body, but that its parts should have equal concern for each other. If one part suffers, every part suffers with it; if one part is honored, every part rejoices with it. 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보편적으로 사람은
크게 세 단계 성장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의존적인 단계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전적으로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혼자서 독립하여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반드시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의존적인 단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독립적인 단계입니다.
부모의 돌봄을 통해
성장을 마치게 되면
사람은 독립적인 단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의존적 단계에서
독립적 단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기 몫을 살아내려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독립적 단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인
상호의존적 단계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나 홀로는 존재할 수도 없고,
한 순간조차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농부가 없이 어떻게 아침을 먹으며,
옷 만드는 사람이 없이 어떻게 입으며,
건축가가 없이 어떻게 집안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부모 없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너 없이 나는 설 수 없고,
너 없이 나는 존재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진실이며 삶의 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독립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독립을 넘어
상대방의 필요와 도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상호의존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단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체,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완벽하게 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가 다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반드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을
경험하고 훈련하기 위해
교회로 우리를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른 말로 하면
신앙공동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고린도 전서 12:25-27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초대교회는
조직이나 종교이기 이전에
함께 삶을 나누고 공유하는
신앙공동체였습니다.
교회가 단순히
여러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라
신앙공동체라는 하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체의 일부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픈 것처럼
교회의 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신앙공동체 전체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며
교회의 한 사람에게 기쁨이 있으면
신앙공동체 전체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지닌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신앙공동체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조직도 건물도 교리도 교단도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들을
교회의 본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신앙공동체입니다.
사교단체나
친목그룹이나
이익단체가 아니라
신앙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늘 신앙공동체를 필요로 합니다.
신앙공동체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인 율법이 나타났던 것처럼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떠나
나 혼자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우리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혼자 믿는 믿음으로는
바른 믿음의 삶을 살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도 결코 아닙니다.
신앙공동체와는 상관없이
나 혼자 신앙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수직선 하나로만 십자가를
완성 할 수 있다는 영적 착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안과 밖입니다.
원인과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나 진실한 관계를
맺을 줄 모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깊지 않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예배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고,
교회 봉사 잘하고,
헌금도 잘 하고…….
이런 것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이런 것들을 잘 한다는 이유로
자기 스스로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생각은 다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양보하고 참고 희생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금식하고 예배드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좋은 믿음의 친구를 만들고
이것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신앙의 승부처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통해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법을 배우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길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통해
훈련하고 연습한 섬김과 사랑과 용서로
내가 속한 가정과 일터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아침묵상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가나안 교인이 계시면
2019년 새해에는 신앙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시는 도전을 하시길 바랍니다.
(가나안 교인: 교회를 출석하지 않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믿으시는 교인)
2019년 한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자 하는
간절하고 절실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성과 영성이 더욱 성숙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2019년 한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므로
복되고 존귀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