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수요일 아침묵상-산을 옮기는 믿음
마가복음 11:20-26 (개역개정, NIV)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26 (없음)
20 In the morning, as they went along, they saw the fig tree withered from the roots.
21 Peter remembered and said to Jesus, "Rabbi, look! The fig tree you cursed has withered!"
22 "Have faith in God," Jesus answered.
23 "I tell you the truth, if anyone says to this mountain, 'Go, throw yourself into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will happen, it will be done for him.
24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25 And when you stand praying, if you hold anything against anyone, forgive him, so that your Father in heaven may forgive you your sins.“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성전의 시대가 끝이 날 것을
하룻밤 사이에 뿌리 채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는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교회의 시대가 시작될 것임을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 시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신앙의 가치를
세 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입니까?
믿음과 기도와 용서입니다.
믿음과 기도와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가치입니다.
믿음과 기도와 용서가
성전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신앙공동체에 필요한
신앙의 가치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과 기도와 용서에 대해
깊이 묵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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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과
연관해서 이해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알기 위해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까?
잎만 무성했지
열매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잎만 무성했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은 사건은
우리의 믿음이
열매 맺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믿음이란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믿는다고 한다면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정작 저들이 믿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저들이 믿은 것은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었으며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였으며
성전세로 드려진 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성전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는
장차 성전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므로
장차 있을 성전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르쳐 주셨지만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도는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하룻밤 사이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만
놀라고 신기해했습니다.
뿌리 채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마가복음 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동문서답과 같은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11:22-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무화과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말라버렸다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면
그대로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면
진짜 산이 바다에 던져진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이 문자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올리브산(감람산)을
바다에 던져 사라지게 하신다는 뜻일까요?
마가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17-18(새번역)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실제로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독사를 손으로 집어 들거나
청산가리와 같은 독약을 먹고 죽은 사람이
기독교 역사에는 꽤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교회 지도자들은 변명하기를
의심하는 마음으로
독사를 들거나 독약을 먹었기에
죽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얼핏 성경의 기록된 말씀이
조금도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지키려는 노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는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
믿으라고 하는 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상징이나 비유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천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눈앞에 보이는 산을
바다에 던져지라고 명령을 해서
산을 바다에 빠뜨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사람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의심하지 않고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면
그대로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도대체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종교 문화에서
산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나타내는
지극히 일상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저주사건과 연관하여
예수님 말씀의
일차적인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성전이기에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그 성전 역시 무너지고 말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으로는
성전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종교체계가 무너지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저주받은 무화과처럼
뿌리 채 말라버린 성전의 종교는 끝나고
은혜의 시대, 복음의 시대가
찾아왔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희생제물을 바치는
제사종교가 아니라
사랑의 복음, 용서의 복음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연의 산이 아닙니다.
도무지 우리의 능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장애나 어려움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혹독하게
기독교를 핍박했던 로마제국은
초대 기독교인들에게는
태산보다 더 큰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세계를 점령했던 로마제국도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끝내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로마제국이었지
기독교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공의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에
더더욱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당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할지라도
의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오직 하나님은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시고자 하셨던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