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일 목요 아침묵상-하나님의 용서(죄사함)

 

마가복음 11:20-26 (개역개정, NIV)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요,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26 (없음)

20 In the morning, as they went along, they saw the fig tree withered from the roots.

21 Peter remembered and said to Jesus, "Rabbi, look! The fig tree you cursed has withered!"

22 "Have faith in God," Jesus answered.

23 "I tell you the truth, if anyone says to this mountain, 'Go, throw yourself into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will happen, it will be done for him.

24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25 And when you stand praying, if you hold anything against anyone, forgive him, so that your Father in heaven may forgive you your sins.“

 

 

예수님께서는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 시대가 끝나고

장차 새롭게 시작할 교회 공동체를 위해

세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믿음과 기도와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믿음과 기도와 용서 이 세 가지는

서로가 상관없는

별개의 신앙행위가 아닙니다.

 

믿음과 기도와 용서

이 세 가지는

매우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는

신앙행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바른 기도를 할 수 있으며

바른 기도를 하는 사람만이

이웃을 용서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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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소통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선

먼저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용서를

내 삶을 통해 체험하고 확인하기 위해선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비유 가운데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8:21-35 참조)

 

예수님의 비유에 의하면

어떤 왕이 자신의 종들과

결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산을 하는 중 한 사람이

일만 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빚(debt)

왕에게 결산해야 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6십억 불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원화로 따지면

7조가 넘는 돈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7조가 넘는 재산을 가진 사람도

여럿 있지만

예수님 당시 이 금액은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지은 종이

왕에게 엎드려 자비를 구합니다.

 

시간을 주면 갚을 테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합니다.

 

종의 부탁처럼 시간을 주면

종은 왕에게 빚진 일만 달란트를

갚을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주어도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일만 달란트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돈을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돈을 상징하기 위해

일만 달란트라는 돈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왕은 아무리 많은 시간을 주어도

종이 그 빚을 갚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자비를 구하는 종에게

그 사람이 진 모든 빚을 탕감해 줍니다.

 

탕감이라는 것은

나중에 갚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빚이 없는 것으로

해주는 것입니다.

 

탕감은 더 이상 그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종은 그저 시간을 더 주면

반드시 빚을 갚겠다고 했지만

왕은 종의 모든 빚을 탕감해주는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용서에 대해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비유에서 왕은

하나님임을 상징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은

하나님께 지은 우리 각자의

죄의 값입니다.

 

일만 달란트를 갚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 지은 죄의 값을

치룰 수 있는 방법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죄 값(죄의 빚)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왕에게 용서를 받은 종이

집으로 가던 중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백일 치 품삯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신의 동료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멱살을 붙잡고는

자신에게 빚진 것을

빨리 갚으라고 재촉을 합니다.

 

동료가 애원을 합니다.

 

조금만 참아주면

나중에라도 빚을 갚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은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신의 친구를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왕에게까지 들려지게 됩니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왕은

종을 괘심하게 여깁니다.

 

종을 불러다 꾸짖고는

왕에게 진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 종을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명령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까?

 

자신은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많지 않은 빚을 진

자신의 동료를

왜 용서해 주지 못했을까요?

 

종은 자신이 왕에게 용서받는 것과

자신이 자기 동료를 용서하는 것을

별개의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의 생각과 뜻은 달랐습니다.

 

왕이 종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용서해 준 것은

 

종으로 하여금

그의 동료이자 왕의 또 다른 백성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죄 사함

또는 용서에 대한 생각은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의 생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과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을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내가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무조건 용서를 해 준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생각은

절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용서를 받는 것과 용서를 하는 것은

절대로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이 지으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 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말씀은 매우 세심한 주의와

이해가 필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자신이 빚진 일만 달란트를

갚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이미 우리가 받은 더 큰 하나님의 용서를

결코 삶으로 체험하지 못할것이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용서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이웃을 용서하려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용서하려는 노력과

이웃을 용서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지를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비록 새로운 공동체이지만

교회 역시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사람들이 모여 만든 불완전한 공동체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만든

교회라는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도와 함께

서로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것처럼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용서받고 용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