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5일 금요 아침묵상용서 가장 위대한 능력

 

 

마가복음 11:20-26 (개역개정, NIV)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요,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26 (없음)

20 In the morning, as they went along, they saw the fig tree withered from the roots.

21 Peter remembered and said to Jesus, "Rabbi, look! The fig tree you cursed has withered!"

22 "Have faith in God," Jesus answered.

23 "I tell you the truth, if anyone says to this mountain, 'Go, throw yourself into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will happen, it will be done for him.

24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25 And when you stand praying, if you hold anything against anyone, forgive him, so that your Father in heaven may forgive you your sins.“

 

 

예수님께서는 성전시대를 마감하고

새롭게 시작될 교회 시대를 위해

세 가지 중요한 가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믿음과 기도와 용서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믿음과 기도가

신앙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과 기도와 함께

용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인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용서가 없는 기도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고 맙니다.

 

우리와 믿음과 기도를

가장 빛나게 완성하는 것은

용서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용서에 대해 깊은 묵상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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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공생애동안

수많은 이적과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공생애동안 보여주신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과 능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능력을 꼽으라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순간까지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우리는 너무나 단순하게

복수는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용서는 힘이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다릅니다.

 

용서는

가장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은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말씀은

교리적이며 이론적인 사건이지

결코 우리 내면에서 경험되어지는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용서)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죄 사함(용서)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에서 용서가 체험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받은

죄 사함(용서)의 축복을 경험하고

죄 사함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영적원리는

 

우리가 용기를 내어

누군가의 죄를 용서할 때입니다.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는

내 이웃을 용서함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용서가 가지는 위대함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웃과 서로 등진 일이 있다면

먼저 등진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말씀은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이 아니라

복음서를 통해 반복하여 강조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누가복음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그렇다면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반드시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죄를 용서해야만

그때서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이웃의 죄를 용서해야만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남을 용서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용서는

더 이상 은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용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라

우리의 행위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웃이나 형제를 용서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웃들이나 형제를

용서하며 살기보다는

용서하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제 개인적인 주장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 것과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는 것은,

 

결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세요!"

기도한 다음에

 

이웃에 대해서는

"저 놈이 나를 못살게 굴었으니까

한 번 손을 봐주어야지!"

생각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마다,

우리는 나도 이웃을 용서하겠다는

다짐과 결단을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다짐 없이

하나님께 용서만 구한다면,

 

내 죄는 용서받아야 하지만

이웃의 죄는 용서받으면 안 된다는

자가당착(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묵상에서 살펴보았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죄를 용서 받은 사람들이

이웃의 작은 죄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파렴치한 일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파렴치하며 무자비한 일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웃을 용서하겠다는 다짐과 결단 없이

나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기도는

무가치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이

이웃의 죄를 용서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른 믿음도 바른 기도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 이웃을 용서하라고

요구하신 이유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미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죄 사함(용서)의 은혜를 깨닫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용서해 줄 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용서함의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설교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체험되지 못하고

그저 교리적인 말씀, 신학적인 말씀에만

머무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예수님의) 용서하심을

삶으로, 체험으로 깨닫기 위해선,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용서하는 경험이 없이는

도저히 하나님의 용서를

삶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길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가 없이는

도저히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며

살아 갈 수 있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