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월요일 아침묵상–용서가 어려운 이유
마가복음 11:20-26 (개역개정, NIV)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요,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26 (없음)
20 In the morning, as they went along, they saw the fig tree withered from the roots.
21 Peter remembered and said to Jesus, "Rabbi, look! The fig tree you cursed has withered!"
22 "Have faith in God," Jesus answered.
23 "I tell you the truth, if anyone says to this mountain, 'Go, throw yourself into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will happen, it will be done for him.
24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25 And when you stand praying, if you hold anything against anyone, forgive him, so that your Father in heaven may forgive you your sins.“
대부분의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믿음과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에 있어
용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인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죄사함)를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하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건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반드시 나타나고 있어야 하는
절대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사람의 용서가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실수와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면
지속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웃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부부관계, 형제관계, 교우관계
심지어 부모자식과의 관계조차도
용서가 없이 지속될 수 있는 관계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용서 받기만 원하지
용서하는 것은 주저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용서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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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심판받아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영적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족, 친구, 이웃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방법 역시
용서입니다.
용서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깨어진 인간관계를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용서가 아무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깨어진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우리를 심판과 멸망에서 구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용서라는
예수님(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용서는 결코 우리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용서만큼
부자연스러운 게 없습니다.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약의 방식이 훨씬
우리의 본성에 자연스럽습니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는
보복이나 복수에 관한 문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쾌한 복수가 펼쳐지는
드라마나 영화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기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자신의 복수심에 대해
보상받거나 대리만족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삶의 원리와
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capitalism)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경제 원리 중 하나는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이고,
받은 만큼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구에게 손해를 입히면
손해를 입힌 만큼
보상을 해 주어야 하고
누구에게 손해를 받으면
손해를 받은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보니
용서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일뿐만 아니라
반사회적인 행위처럼 여겨집니다.
우리는 흔히
용서하면 나는 손해만 보고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죄를 범한 사람은
아무런 대가도 치루지 않고
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용서를 어렵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용서를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용서를 통해 가장 큰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용서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용서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용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 받지 않으려고
용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용서하지 않는 기억은
절대로 우리의 마음을 떠나가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용서하지 않은 기억은
그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남아
계속해서 우리의 내면에 고통을 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의미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나,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향해
상처를 입게 하는 만큼
우리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일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흔히
상처를 받은 사람만
힘들어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죄를 범한 사람에게는
남에게 준 상처보다
더 큰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죄책감입니다.
우리 속담에
“맞은 놈은 두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남에게 죄를 짓거나 상처를 주고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세상에는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양심에 화인(stigma)을 맞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영혼이라는 존재 때문인데
양심의 화인을 맞았으니
이 사람이 무엇으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굳이 하나님의 영적원리가 아닌
자본주의 경제 원리를 따른다고 해도
용서하지 않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며 효율적입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가 용서하지 못합니까?
우리가 착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우리의 인격에 결함이 있어서일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는 인격이 훌륭하기에,
마음이 착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인격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는 것에 대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용서는
내 능력으로 내 인격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하나님의 용서와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것만이
죄의 악순환, 고통의 악순환 등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가장 강력한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아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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