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일 화요 아침묵상-용서에 대한 오해

 

마가복음 11:20-26 (개역개정, NIV)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요,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26 (없음)

20 In the morning, as they went along, they saw the fig tree withered from the roots.

21 Peter remembered and said to Jesus, "Rabbi, look! The fig tree you cursed has withered!"

22 "Have faith in God," Jesus answered.

23 "I tell you the truth, if anyone says to this mountain, 'Go, throw yourself into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will happen, it will be done for him.

24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25 And when you stand praying, if you hold anything against anyone, forgive him, so that your Father in heaven may forgive you your sins.“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신앙의 가치를

믿음과 기도와 용서

이 세 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면

 

용서가 없는 기도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중언부언하는 기도와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용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막상 용서를

실천하며 사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용서받기를 원하면서도

유독 용서를 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용서가 우리의 본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용서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용서에 대해

잘못된 이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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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또는 예배할 때

반드시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은

이웃과의 화해이며 용서입니다.

 

마태복음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용서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웃을 용서해야 하는 것을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앙행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죄인인 나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서로의 죄를 용서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결국 이웃을 용서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수없이 많은 기도와 고백을 한다고 해도

이웃을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이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며,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하셨는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용서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용서를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물론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용서가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면서도

여전히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성경이 말씀하는 용서를

대부분의 교인들이

오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비굴

자기 자신을 낮춘다는 모습에서는

얼핏 대단히 비슷하게 여겨지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자세이며 행동입니다.

 

겸손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비굴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자기를 낮추어 비위를 맞추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순종과 맹종 역시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따른다는 모습에서는

얼핏 대단히 비슷하게 여겨지지만

이 둘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태도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 역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순종은

목사의 말이라고 하면

아무리 이상하게 여겨진다고 해도

절대로 토 달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는 것이

순종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순종이 아니라 맹종입니다.

 

맹종은 신앙의 덕목이 아니라

신앙을 변질시키고 타락시키는

불신앙의 덕목이라는 것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과 생각과 마음의 변화 없이

그저 말로만 잘못했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매번 같은 죄를 반복하면서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고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용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가

잘못했다고 기도하기만 하면

용서가 쏟아져 나오는

용서 자판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은

내가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과

늘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사건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가

죄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책임까지도

면제받는다고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받은 사람은

내가 저지른 죄나 실수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을

자발적으로 지려는 사람입니다.

 

용서를 내세우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어야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게 됩니다.

 

또한 책망과 용서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마땅히 책망해야 할 일조차

책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유대 사람들이 오자

그만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베드로가 갑자가

식사 자리를 떠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비난받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식사자리를 떠나자

함께 식사를 했던 여러 사람들도,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베드로의 위선에 참여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베드로를 대면하여 책망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11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용서한다는 것은

마땅히 책망해야 할 일 조차

꾸짖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책망해야 할 일은 책망을 하되

그렇다고 그 일 때문에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과 의자를 뒤엎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냈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타락시키는

장사꾼들의 행위에 대한 책망이며 경고이지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는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거나

사람에 대해 원한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생각이나 의견의 차이도 있고

갈등과 분열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투거나

서로 다른 주장을 하거나

갈라서는 것이

용서가 없는 삶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미워하거나 원한을 품지 않고

다투는 법을 배워야 하고,

미워하거나 원한을 품지 않고

의견의 차이를 주장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워하거나 원한을 품지 않고

갈라서기도 하고 이별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용서는

잘못된 것도 무조건 괜찮다고

인정하거나 덮어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잘못된 행위나 태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미워하고 싸워야 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끝까지

회개의 기회를 베푸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용서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대신

잘못된 행위나 태도 위선 가식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미워하고 싸울 수 있는

사람과 죄를 분별할 줄 아는

깨달음과 믿음을 주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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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