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화요일 아침묵상-문자주의 신앙의 한계
마가복음 12:18-27 (새번역, NIV)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19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만 남겨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여자를 맞아들여서, 그의 형에게 뒤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20 형제가 일곱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얻었는데, 죽을 때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21 그리하여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는데, 그도 또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일곱이 모두 자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3 그들이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2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떨기나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생각을 크게 잘못하고 있다."
18 Then the Sadducees, who say there is no resurrection, came to him with a question.
19 "Teacher," they said, "Moses wrote for us that if a man's brother dies and leaves a wife but no children, the man must marry the widow and have children for his brother.
20 Now there were seven brothers. The first one married and died without leaving any children.
21 The second one married the widow, but he also died, leaving no child. It was the same with the third.
22 In fact, none of the seven left any children. Last of all, the woman died too.
23 At the resurrection whose wife will she be, since the seven were married to her?"
24 Jesus replied, "Are you not in error because you do not know the Scriptures or the power of God?
25 When the dead rise, they will neither marry nor be given in marriage; they will be like the angels in heaven.
26 Now about the dead rising--have you not read in the book of Moses, in the account of the bush, how God said to him, 'I am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27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You are badly mistaken!"
마가복음
11장 27절부터 12장 37절까지는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벌어진
신앙 논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가장 먼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문제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포도원을 독차지 하려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종교지도자들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지만
예수님 주변의 수많은 무리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잡지 못한 종교지도자들은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을 보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을 통해
로마황제에 대한
세금문제를 질문하게 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교묘한 시도는
저들의 속임수를 알아채신
예수님의 지혜로운 말씀으로 인해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사람들이
바로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신앙논쟁에 대해 묵상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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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토론이나 논쟁을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눔으로
오히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의미에서
추천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여러 차례 논쟁을 걸어온 이유는
예수님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알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흠집 내고
예수님의 권위를 무너뜨려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을 떼어놓는 것이
저들의 목적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부활에 관한 문제를 질문한 것은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따르게 되면
부활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고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예수님의 모습을
군중들에게 보이는 것이
저들의 진짜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사두개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이용하여
부활의 허점을 지적하는
자신들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우쭐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저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복잡한 질문을 듣고는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당황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간절함이라는 조금도 없고
오직 자신들이 아는 율법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속셈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의 교묘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마가복음 12: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두개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들먹이며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것을 들어보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안다는 율법조차도
깊이 있게 알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는 말씀으로
자칭 율법의 전문가라는 사두개인들의
율법에 대한 무지와 어리석음을
낱낱이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을 향해
성경을 모른다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하게 성경에 대해
지식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였고,
모세오경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의 말씀을 가지고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무너뜨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두개인들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게 있었음에도
예수님으로부터 성경에 대해
모른다는 책망을 들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
완고한 문자주의를 고수했습니다.
문자주의란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문자라는 그릇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보다는
문자로 기록된 글자에만 집착하여
문자 그대로만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성경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문자는
시대적 한계, 문화적 한계, 상황의 한계
지리적 한계, 사람의 한계 등등
수없이 많은 한계를 지닌
불완전한 인간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형이 결혼해 살다가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에게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주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신명기에 기록된 이 율법은
남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한 순간에 사회적 약자가 되었던
과부들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죽은 형제의 대를 잇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가정에게 나누어 주신
본래의 기업(땅)을 지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율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남편의 죽음으로 사회적 약자가 된
과부를 돕기 위해 주신 율법의 본래 정신은
조금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부활이 있다고 하면
동생과 결혼한 여자는
나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문제를 걸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문자에 담긴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이 만든 문자에 집착하는
문자주의 신앙이 가진 한계와 문제를
사두개인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스스로 문자주의에 빠졌기에
성경을 많이 알기는 알아도
결국 성경에 대해
무지한 자가 된 것입니다.
성경을 모른다는 예수님의 책망은
성경에 대한 지식의 유무가 아닙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성경에 대해 모를 수 있으며
성경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도
성경에 대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 대해 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율법이나 사건에 대해
빠짐없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을
성경을 아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을 때에만
성경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며
생각을 잘못 하기 때문이라고
사두개인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불완전한 사람의 문자와 교리와 신학에
제한하거나 묶어두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능력 또한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사람의 문자나 교리로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성전에다 제한하려고 했던
성전 신앙의 실패를 반복하는
잘못된 믿음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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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