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수요일 아침묵상-사두개인들과의 부활논쟁
마가복음 12:18-27 (새번역, NIV)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19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만 남겨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여자를 맞아들여서, 그의 형에게 뒤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20 형제가 일곱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얻었는데, 죽을 때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21 그리하여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는데, 그도 또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일곱이 모두 자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3 그들이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2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떨기나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생각을 크게 잘못하고 있다."
18 Then the Sadducees, who say there is no resurrection, came to him with a question.
19 "Teacher," they said, "Moses wrote for us that if a man's brother dies and leaves a wife but no children, the man must marry the widow and have children for his brother.
20 Now there were seven brothers. The first one married and died without leaving any children.
21 The second one married the widow, but he also died, leaving no child. It was the same with the third.
22 In fact, none of the seven left any children. Last of all, the woman died too.
23 At the resurrection whose wife will she be, since the seven were married to her?"
24 Jesus replied, "Are you not in error because you do not know the Scriptures or the power of God?
25 When the dead rise, they will neither marry nor be given in marriage; they will be like the angels in heaven.
26 Now about the dead rising--have you not read in the book of Moses, in the account of the bush, how God said to him, 'I am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27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You are badly mistaken!"
마가복음
11장 27절부터 12장 37절까지는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벌어진
신앙 논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과의
다섯 번에 걸쳐 벌어진 신앙 논쟁은
예루살렘 지역에서 벌어졌다고 해서
흔히 예루살렘 논쟁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예루살렘 논쟁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의 권한(권세)에 관해
논쟁이었습니다.
두 번째 예루살렘 논쟁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포도원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예루살렘 논쟁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과의
세금에 관한 논쟁이었습니다.
네 번째 예루살렘 논쟁은
지난 월요일부터 묵상하고 있는
사두개인들과 벌인
부활에 관한 논쟁입니다.
오늘 아침묵상에서는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사두개인들의 주장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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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들은
시편 잠언 전도서와 같은 지혜서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서와 같은 역사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아모스서
에스겔서, 다니엘서와 같은 예언서는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오로지 모세의 율법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이
율법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장로들의 유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은 이유는
저들이 성경으로 인정하는 모세오경에는
부활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사야서나 다니엘서 등에는
죽음 후의 부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두개인들은 예언서를
성경으로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았기에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두개인들은
육체의 죽음과 더불어 영혼도 함께
소멸한다고 믿었습니다.
사두개인들에게 영원한 삶이란
자녀들을 통해 대를 잇는 것만이
영원한 삶이었습니다.
반대로 사두개인들에게
영원한 죽음이란
대를 이을 자손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에게는
대를 이을 자녀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이자 심판으로 여겼습니다.
사두개인들의 이러한 신앙은
모세오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모세오경에는
죽음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모세오경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죽음 자체가 심판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는
비록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자식 대에 또는 후손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은
후손의 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 어떤 것보다 컸습니다.
물론 대를 이을 후손이 없다는 것은
사두개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원초적인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은
자식이 없이 죽은 형제를 위해서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게 하고 그 자식으로 하여금
죽은 형제의 대를 잇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신명기 25:5-6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에,
그 죽은 사람의 아내는
딴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지 못한다.
남편의 형제 한 사람이 그 여자에게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래서 그 여자가 낳은 첫 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게 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이러한 모세 율법을 근거로 해서
만약 부활이 있다고 한다면
굳이 살아있는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여
죽은 형제의 대를 잇는 율법이
필요 없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신명기 25장의 율법을 이용해
부활이 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며
저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는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두 가지로 반박하십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반박입니다.
마가복음 12:25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부활 후에는 더 이상 결혼이 필요 없고
하늘의 천사와 같이 된다는 말씀으로
부활 전의 삶과 부활 후의 삶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부활 이후의 삶은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가지고
부활 이후를 상상하고 규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능력을 사람의 생각으로 제한하는
불신앙이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내가 믿는 교리에 대해 말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제정한 특정 교리들을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진리라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사람이 해석해서 만든 교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교회나 교단의 교리가 있다면
교리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몇 가지 교리를 가지고
성경 전체를 판단하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믿는 교리에 맞지 않는
성경의 가르침이 있으면
성경의 말씀조차 거부하려고 합니다.
그 어떤 교단의 교리라 할지라도
모든 교리는 사람이 해석하고 만든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바꿀 수 없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결코 아닙니다.
비록 교리가 성경의 말씀을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하지만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오랜 신앙전통을 통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교회의 교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종교지도자들의 성경 지식으로
만들어진 교리를
절대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정 교리를 가지고
부활에 대해,
구원에 대해,
심판에 대해,
종말에 대해,
지옥에 대해,
천국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역들을
사람이 단정하고 규정하는 것은
전능하다고 고백하는 하나님을
사람의 언어로 제한하고
사람의 생각으로 한계를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라서
하나님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두개인들의 억지 주장에서 보듯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성경에 기록된 문자에만 집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신앙은 사두개인들처럼
성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심지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조차도
자신의 생각의 틀에 가두어 버리게 됩니다.
이런 신앙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하나님과는 상관도 없는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오늘의 기도】
종교지도자들이 만든 교리가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아는 일에
우리의 마음을 두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