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일 화요 아침묵상-가난한 과부의 헌신

 

마가복음 12:41-44 (새번역 NIV)

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셔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41 Jesus sat down opposite the place where the offerings were put and watched the crowd putting their money into the temple treasury. Many rich people threw in large amounts.

42 But a poor widow came and put in two very small copper coins, worth only a fraction of a penny.

43 Calling his disciples to him, Jesus said, "I tell you the truth, this poor widow has put more into the treasury than all the others.

44 They all gave out of their wealth; but she, out of her poverty, put in everything--all she had to live on."

 

사순절 열두 번째 날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당시 사회의 종교 지도자와 권력자들에게는

미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가식과 교만을

단호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반면에 당시 사회의 약자들에게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위로해 주시고

심지어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가난한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설교되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이 사건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인지

질문을 가지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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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경우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가난한 과부의 헌신과 믿음을

칭찬하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설교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앞뒤 전체적인 배경(맥락)에서 살펴보면

이런 식의 해석은

매우 잘못된 해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사건

바로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에 대해

과부들의 가산을 삼킨다고

비판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사건 다음에는

타락한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고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가난한 과부의 헌신과 믿음을

칭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전과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율법학자들이나 제사장들이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성전을 이용해

어떻게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사건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성전에 대한 유대백성들의

순수하고 순진한 믿음을 이용해

가난한 과부의 가산마저도

삼켜버렸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2: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교회가 필요하다면

교회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필요이상으로 더 크고 화려한

교회 건물을 지으려고 합니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며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크고 아름답게 짓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교인들을 선동합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을 위한

과도한 헌금을 요구합니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더 많은 헌신과 헌금을

얻어내기 위한

매우 의도적이고 교묘한 선동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조차도

성전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큰 건물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과부의 가산마저 삼키는 타락한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아니라

그저 큰 건물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다는 교회가

교회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며

교인들에게 필요이상의

과도한 헌금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난한 과부의 헌신과 믿음에 대한

칭찬의 말씀이 아닙니다.

 

가난한 과부에 대한

탄식에 가까운 말씀입니다.

 

부자들이 넉넉한 데서 헌금한 돈은

그들에게는 먹고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던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과부는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음으로

당장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과부는

성전에 드려진 헌금으로

가장 먼저 도와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생활비 전부를 드린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성전과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을 이용해

가난한 과부의 삶을 빼앗은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교인들의 더 큰 헌신과 희생,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과 성전까지도 이용하는

심각한 영적 타락을

강력하게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과부의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이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가난한 과부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깊었을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성전 헌금함에 집어넣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부자들이 넉넉한 가운데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해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추구하기 위한

종교적 선동에 넘어간 결과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과부의 신실한 믿음은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탐욕을 채우는 데 잘못 사용되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신실한 믿음이

예수님이 심판하고자 했던

타락한 성전 제도를 유지시키는 데

엉뚱하게 잘못 이용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과부가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이용만 당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가난한 과부의 헌신과 믿음은

그 어떤 부자들보다도

더 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가르쳐 준

방식 이외에는 몰랐습니다.


성전에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종교 지도자들은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가난한 과부는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서

자신의 생존까지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분명 가난한 과부의 행동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넣은

가난한 과부의 어리석음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가난한 과부가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며

탄식하시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식은

가난한 과부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탐욕에 대한

탄식이기도 합니다.

 

결국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통해

성전 제도가 얼마나 타락했으며

율법학자들과 제사장들의 탐욕과 부패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저들이 사랑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이었습니다.

 

물론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 헌금을 내는 것은

잘못된 성전 제도를 유지하고

율법학자들과 제사장들만

배불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난한 과부의 행위는

타락한 성전 제도와

율법학자들과 제사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왜 필요한지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행동으로 인해

당시 제사장들과 율법학자이

하나님을 이용하고 성전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있음이

낱낱이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영적 도전입니다.

 

비록 성경에 대한

또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어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쳐 주는

잘못된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순전하고 순수하며 헌신적인 믿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의 거짓 가르침을

세상에 낱낱이 드러내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이 땅에 순전하고 순수한

그리고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교회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과 탐욕을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