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수요일 아침묵상-기도에 대한 잘못된 믿음
야고보서 4장 2-3절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2 You want something but don't get it. You kill and covet, but you cannot have what you want. You quarrel and fight. You do not have, because you do not ask God.
3 When you ask, you do not receive, because you ask with wrong motives, that you may spend what you get on your pleasures.
기도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그 어떤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중요한 영성입니다.
영적인 성숙을 이루는데 있어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규칙적인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도는 신앙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영성입니다.
오늘날 조국의 교회가
엄청난 속도로 부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기도의 힘이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새벽 기도로부터 시작해서
수요 기도회, 금요 철야기도회 등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기도에 대한 열심은
세계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기도에 대해
한국 교회가 보여준 기도의 영성은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그 어떤 신앙 행위보다
치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로 흥한 한국교회가
기도로 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기도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한국 교회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단지 오늘날 한국교회 만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하시던
유대 사회에도 있었던
매우 뿌리 깊은 고질병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 사람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에 대해
지적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도한 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외식하는 기도였습니다.
마태복음 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오래 기도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똑같은 말이나 빈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중언부언 하는 기도를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사람들에게
자신이 신실함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기 위함입니다.
기도는 본래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를 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람을 의식하고 하는 기도를
예수님은 단호하게
외식하는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시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기도에 대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외식하는 기도였다고 한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기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도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기도에 대한 대표적인 믿음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발견하는
기도에 대한 믿음을 보면
기도는 언제나
‘나의 요구’를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것이며
기도의 응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기도라고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반드시 얻어내는 또는 성취되는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라고 생각 한다는 것입니다.
얻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 하지 않기 때문이요,
기도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성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기도한 것을 얻을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불굴의 의지를
불 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에 대한 이 같은 믿음은
한국 교회에 깊게 뿌리 내려 있습니다.
심지어 도대체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이
기도에 대해 이렇게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도에 대한 이런 믿음이
왜 문제가 됩니까?
정성과 노력을 다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기도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이기적이고 물질적이고
탐욕스럽다 할지라도
열심히 구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기도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기도하였음에도 응답받지 못하는 것을
정성이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여기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에 대한 믿음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기도의 원리와는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서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성경은 기도 응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리는
기도에 대한 정성이나 노력이 아닙니다.
기도 응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리는
무엇을 구하는가에 있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하고 노력을 다해
수많은 시간을 기도한다고 해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절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응답받는 기도는
정성과 노력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삶과 태도가 어떠한지
무엇을 구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성경은 기도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어서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중요하게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필요를 벗어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도 생활만 열심히 한다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양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기도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잘못된 기도는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과
더욱 멀어지게 만듭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 기도는
아무리 기도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기독교 신앙의 기도가 아닙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욕심과 탐욕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욕심과 탐욕을 내려놓기 위한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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