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월요일 아침묵상-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기
마태복음 26장 39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Going a little farther, he fell with his face to the ground and prayed, "My Father, if it is possible, may this cup be taken from me. Yet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할 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하나님으로 충만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생각(묵상)하므로
나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이 추구해야 하는
기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해 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하게 되면
사람이 변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이전까지 도무지 내려놓을 수 없었던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며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의 거짓된 자아가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통해
내 삶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기도를 통해 내가 변화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될까요?
기도를 통해
내가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하소연하는) 시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만약 한 시간 동안
예수님을 만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에게 좋은 것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겠습니까?
아니면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털어놓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앞에 앉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저라면 만사를 제치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도는
신세한탄이나 하소연
또는 자아도취나 자기최면에 빠져
자신의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일상의 절박하고
절실한 필요를 위해서는
간구하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간구하는 기도가
기도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간구하는 기도도 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도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또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도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기도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의 말은 대부분
거짓 자아나 욕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게 되면
신세한탄이나 자기최면에 빠져
온갖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보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침묵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침묵할 때
들려지는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인생의 참된 진리를 깨답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시편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기도에 대해 오해하기를
언어 행위로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본질적으로
말로 자신의 감정과 소원을 늘어놓는
언어 행위라기보다는
자세와 태도의 문제입니다.
기도는 본질적으로
자신을 어디에 놓느냐의 문제입니다.
기도는 자신을 삶을
하나님 앞에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런 사건을 경험하는 영적 통로입니다.
언제 부턴가 한국교회에서
묵상기도나, 침묵기도의 영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묵상기도나 침묵기도만
바른 기도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합심기도도 하고 통성기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야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믿는 것은
매우 문제가 많은 믿음입니다.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절박함과 절실함의 표현이지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절박하고 절실하게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절박하고 절실해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십자가의 길을 피하게 해 달라고
절박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셨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싶었던
인간의 육신을 가진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해
신비주의적인 것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간혹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마치 육신의 귀로 들은 것처럼 주장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을 말씀은 영적 깨달음으로 옵니다.
육신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로 들려집니다.
하나님 앞에 묵묵히 앉아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영을
집중시키고 있으면
영적인 눈이 열려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바로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이 깨달음을 구하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마음과 생각과 영을 다해 서게 되면
내 마음을 붙들고 있던
쓸데없는 생각과 관심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새로운 생각과 관심들이
밀물처럼 밀려듭니다.
다석 유영모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곧 기도’
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신학의 원리”라는
매우 유명한 책을 쓴
존 매쿼리(John Macquarrie)라는 신학자 역시
‘기도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이라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만을 깊이 생각하므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과 인생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과 인생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변화되며,
변화된 우리의 삶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므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게 하시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