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일 화요 아침묵상-쉬지 말고 기도하기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Be joyful always; pray continual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는

종교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도라는 신앙행위가 있습니다.

 

문명을 등지고 사는 원시부족들도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건강과 식량, , 자녀 얻기를 기도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기도를 올립니다.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는 일에는

운전을 하든, 커피를 마시든,

축구 경기를 하든, 예외가 없습니다.

 

불교신자들의 기도에 대한 열정은

다른 종교인들이 보여주는

기도에 대한 열심을 뛰어 넘을 만큼

엄청나고 대단합니다.

 

불교신자들이 드리는 기도를 보면

기본이 108배이고

좀 더 신실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1000, 3000배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교신자들의 기도의 정성도

마야나 잉카, 아즈텍 부족들이

드린 기도에 비하면 별 것 아닙니다.

 

이들은 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까마득한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이백여 년 전만 해도

공공연히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종교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절대자()에게

최대한의 정성과 노력을 바쳐 기도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는 절대자()에게

모든 정성과 노력을 바쳐서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이 믿는 절대자()에게

모든 정성과 노력을 바치는 기도를 통해

신을 감동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럼 신을 감동시키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전능하신 신을 감동시켜

신의 마음의 움직여서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함입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아닙니다.

 

정성과 노력을 하나님께 드려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가르침도 아닙니다.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은

 

장독대에다 찬물 떠다 놓고

새벽마다 기도를 드리는 것이나,

서낭당 아래 떡 가져다 놓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나,

별 반 차이가 없는 기도입니다.

 

자신의 정성과 노력으로

전능하신 신을 감동시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믿음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아니라

지극히 무속적(샤머니즘)인 믿음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정성과 노력을 하나님에게 드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과 노력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에 감동하여

반드시 보답한다는 믿음은

 

기도라는 영성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Give & Take) 거래로 만들어 버리는

지극히 세속적인 일이 되고 맙니다.

 

신학자 윌리엄 바클리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끊임없는 지식으로 가득하기를

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기도에 대한 신학자의 말을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기도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과 생각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지금까지

내 소원과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나의 뜻과 소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까?

 

이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단 하루도 쉬지 말고 매일 같이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중세 교회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서는

평생을 기도만 하였던 신앙인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들어가

일 년 365, 하루 24시간을 기도하는 것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단 한 순간도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사람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내팽개치고는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같이 밥을 먹지만

단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허기가 지고 배고 고픕니다.

 

오늘 하루 다음 날 양까지

밥을 먹었다고 해서

다음 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오늘 먹을 밥은 오늘 먹고

내일 먹을 밥은 내일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으로

매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하며

 

규칙적으로

매일 같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도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를 단 한 번만 건너 띄어도

지금까지 지켜왔던 믿음을

단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까?

왜 규칙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우리 안에 감추어진 욕심이

우리의 믿음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커지고 저절로 강해집니다.

 

하지만 믿음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도를

단 한 순간만 멈추어도

어느새 욕심이 자신을 지배합니다.

 

욕심은 결코

욕심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욕심은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합니다.

 

그리고 그 죄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소원과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함이 아닙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도무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은 욕심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 위함입니다.

 

 

오늘의 기도

 

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도를 멈추게 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 대신

탐욕과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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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