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일 금요 아침묵상-청원 기도

 

 

마태복음 6:9-13(새번역, NIV)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오며,

10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9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10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11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12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13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기도는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나를 향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자꾸 강조하다보니

자칫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기도는

잘못된 기도인가

오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부탁하는 기도를

간구라고 하기도 하고

청원기도라고 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하는

청원기도는

절대로 잘못된 기도(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한 당연한 일이며

마땅히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구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하신 하나님께

구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연약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구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지독한 교만이며

잘못된 믿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연약한 우리가 도움을 구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는

예상치 못한 고통과 고난,

원치 않는 위기로 가득한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하고 바라는 청원기도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청원기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교인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바라느냐에 있습니다.

 

기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청원 기도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하나님께 구하고 바라는 것을 살펴보면

지극히 세속적이며

물질적인 것이기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절박한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쯤은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한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기도가 교회에 넘쳐납니까?

 

필요한 것을 구하기보다

필요를 넘어선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일상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믿는 자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시험을 앞에 두고 있을 때,

여행을 떠날 때,

경제적인 위기 앞에서,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일상의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일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마땅히 가져야 하는

우리의 믿음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원기도에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필요와 욕심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입니다.

 

필요와 욕심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청원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마저 이용하려는

탐욕에 지나지 않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야 할 집이나, 자동차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최고로 유명하다는

어느 목사님이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교해서

수많은 교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목사의 기도에 설교를

단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싶으면

그냥 자동차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답니다.

 

어느 회사 자동차를 원하는지

무슨 모델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목조목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배우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그냥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기도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직장은 어디여야 하고,

연봉은 얼마여야 하고,

키 몇 센티미터,

몸무게 몇 킬로그램,

장남인지 차남인지 막내인지,

그리고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위치는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을 보던, 소개팅을 하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식의 기도가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이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일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런 식의 기도는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시는 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연봉 얼마, 키 얼마, 외모 얼마의 배우자,

무슨 회사 무슨 모델의 차,

얼마자리, 몇 평짜리 집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렇게 응답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기도입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결국

자기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때만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기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져야만

그것을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보다

오히려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더 중요하다는

거짓신앙, 사이비 신앙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우리의 필요이지

우리의 욕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청원기도가 바른 기도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필요와 욕심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구별할 줄 모른다면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번 한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 주 아침 묵상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아침묵상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미주 연회 참석하는 관계로 인해

한 주간 쉽니다.

 

513일 월요일 아침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필요와 욕심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와 정직함을 가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