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일 수요 아침묵상-낙심하지 않고 기도하기2

 

 

누가복음 18:1-8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Then Jesus told his disciples a parable to show them that they should always pray and not give up. He said: "In a certain town there was a judge who neither feared God nor cared about men. And there was a widow in that town who kept coming to him with the plea, 'Grant me justice against my adversary.' "For some time he refused. But finally he said to himself, 'Even though I don't fear God or care about men, yet because this widow keeps bothering me, I will see that she gets justice, so that she won't eventually wear me out with her coming!'" And the Lord said, "Listen to what the unjust judge says. And will not God bring about justice for his chosen ones,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m off? I tell you, he will see that they get justice, and quickly. However,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어제에 이어 계속해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로 알려진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가지고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 것을

가르치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항상 기도하며 낙망하지 말라

하신 것일까요?


비유를 하시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

항상 기도하며 낙망하지 말아야 할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입니다.

 

누가복음 1720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하냐고 묻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님의 선포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 데

도대체 그 하나님 나라가

오기는 오느냐는 의문입니다.

 

누가복음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Once, having been asked by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Jesus replied, "The kingdom of God

does not come with your careful observation,

nor will people say,

'Here it is,' or 'There i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하나님 나라가 오긴 오느냐며

빈정거리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게 아니라

너희 안에 이미 있다 말씀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대체 오기는 오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있다고

대답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노아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이미 예언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무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비웃고 무시하였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

때때로 의심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해 졌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늦어지는 것 같다고

결코 낙망하지 말라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이 바로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어떤 도시에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무시하는 재판관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런데 그 도시에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과부는

고아와 함께 가장 무시당하던 사람이었고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누구도

과부의 억울한 일에 대해서

신경을 써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해야 할 재판관 역시

과부의 억울한 사정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과부가 재판관에게 간청하는 내용입니다.

 

과부는 자기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재판관에게 간청합니다.

 

원한이 무엇입니까?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복수 해달라는 것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원한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에크티케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은

바르게 하다, 의롭게 하다입니다.

 

NIV 성경은 이것을 justice라고,

KJV 성경은 avenge라고,

공동번역은 올바른 판결이라고 번역했습니다.

 

Luke18:3

Avenge me of mine adversary.(KJV)

 

Luke18:3

Grant me justice against my adversary.(NIV)

 

누가복음 18:3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라댔다.

(공동번역)

 

따라서 원한을 풀어 달라는 의미는

내게 정의를 베푸소서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고,

나를 의롭게 하소서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석되든 간에 과부는

단순히 자기의 사정만 봐달라는 의미나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통해

정의를 실현해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여기서 눈 여겨 볼 사실은

재판관은 불의한 자이기 때문에

정의로운 판결을 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부는

재판관이 귀찮아 할 정도로 자주

그를 찾아가 정의를 실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재판관이 결국 어떻게 합니까?

 

뇌물이나 바라고,

힘 있는 사람들의 말만 들어주던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부탁을 들어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기로 결심합니다.

 

누가복음 18:4-5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재판관이 고백하듯이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습니다.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불의한 재판관이

마음을 바꾸어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번거롭고 괴로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8:6-8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과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불의한 재판관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애원을 하면

마음을 바꾸어 소원을 들어줍니다.

 

그런데 하물며

가장 선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원한(정의, 바르게 함)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비유에서 불의한 재판관은

오랫동안 과부의 부탁을 듣지 아니하다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과부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는 달리

택하신 사람들의 원한에 대해

오래 참지 아니하십니다.

속히 들어주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의로운 재판관인 하나님은

의와 거룩함을 가지고 동시에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유의 마지막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는 말씀으로 끝맺고 있다.

 

인자가 올 때

언제를 말하는 것입니까?

 

인자가 올 때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자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때입니다.

 

따라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은

현실의 어두운 모습만 보고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냐며 빈정거리는

바리새인들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올 것임을 믿고

흔들리지도 낙심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늦어지는 것 같지만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분명한 언약의 말씀이니까

이것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항상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는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주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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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