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 수요 아침묵상-일용할 양식

 

마태복음 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오늘 아침묵상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 대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신앙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경건훈련입니다.

 

그중에서도 기도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경건훈련이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가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건훈련인 이유는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결정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내 삶에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인생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깨닫고

내 인생에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진정어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기도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이루려는

수단과 도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깨닫고 발견하기 보다는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종교적 수단으로 여깁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기도에 대한 매우 심각한 왜곡입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기도의 형식만 있지

실제로는 기도를

함부로 남용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국에서 매우 이름이 난 목사가

기도에 대해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싶으면

단순히 그냥 자동차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어느 회사 자동차를 원하는지

무슨 모델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자동차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아닌지를

즉각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배우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그냥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기도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직장은 어떤 직장에 연봉은 얼마,

키 몇 센티미터,

몸무게 몇 킬로그램,

장남인지 차남인지 막내인지,

그리고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위치는 어느 정도인지

모든 것을 놓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을 보던, 소개팅을 하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식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이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일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런 식의 기도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라고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말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요술램프의 지니 요정쯤으로 여기는

신성모독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기도하는 교인들이 있을 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인들의 기도생활을 보면

이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는 교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개인의 절박한 어떤 필요나 요구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가

잘못된 기도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개인의 절박한 필요나 요구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지극한 당연한 일이며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불완전한 우리가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연약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구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교만이자

매우 잘못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개인이나 공동체 또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절박한 필요나 요구를 간절히 구하는 것은

마땅히 우리가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구별할 것은

무언가를 구하고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구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타락했다고

사람들에게서 비판받는 이유는,

구하고 바라는 기도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하고 바라는 것 대부분이

지극히 물질적이며 탐욕스러운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구하고 바라는 것 대부분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구하고 바라는 것 대부분이

일상의 필요를 넘어서는

지나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그깟 일용한 양식이

뭐 대단히 중요하다며 무시합니다.

 

이왕 하나님께 기도할거면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서는

최소 1년 먹을 양식이나, 10년 먹을 양식

또는 평생 먹을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지

1년 먹을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년을 먹을 양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0년을 먹을 양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생을 먹을 양식이 아니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루를 먹을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 누구도 한 번에

1년치 음식, 10년치 양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루에

하루치 양식만 먹고 살아갑니다.

 

무슨 뜻입니까?

 

미래에 대한

지나친 염려에 때문에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도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사람은 한 번에

하루씩 살아가는 존재이지

한 번에 1년씩 10년씩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내일을 장담하며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내일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위해

오늘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오늘 하루의 기쁨과 감사를 위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Carpe Diem

 

오늘의 기도

 

오늘도 우리에게 또 한 날을 주셨으니

이 하루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하시고

일용할 양식으로 우리를 도우시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