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일 금요 아침묵상-우리에게

 

마태복음 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오늘 아침묵상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서

오늘도 우리에게에 대해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예수님 당시 매우 절실한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에는

하루 먹을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사람보다

그 날 먹을 양식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불과 백여 년 전에는

하루하루 먹을 양식을 얻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하루 세 끼를 걱정 없이

챙겨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나,

우리의 조국 한국에서는 더 이상

하루 먹을 양식을 놓고

걱정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가는 곳마다 먹을 것이 차고 넘칩니다.

 

물론 지금도 하루 먹을 양식을 놓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는 사람을 찾는 것보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를

절박하고 절실하게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오늘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또는 오늘 저의 가족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본 아침묵상에서 언급했지만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예수님께서 반복하여 사용하셨던

매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 들게 하지 마시옵고,

 

그리 길지도 않은 주기도에

자그마치 여섯 번이나 우리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단지 내 아버지만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디까지를 우리라고 여겨야 할까요?

 

여러분에게 어디까지가 우리입니까?

 

우리 가족, 아니면 우리 교회,

아니면 최대한으로 여겨서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우리의 조국 한국까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한계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하나님께는 어디까지가 우리일까요?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이스라엘 유대민족까지가

하나님께 우리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주(Lord)로 고백하는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까지가

하나님께 우리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까지만

우리라고 여기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여기시는 범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라 믿습니다.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는 분명

유대인으로 오셨고 유대인으로 사셨지만

예수님께서 생각하신 우리는

모든 민족, 모든 인종, 모든 사람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전에는 오직 나만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부터는

부모형제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 가족만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부터는

함께 신앙생활하는 교인들을

우리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 나라만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부터는

이웃 나라 이웃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은

80억의 인구를 먹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세계의 인구는

대략 71억 명 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9억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20억 명은 영양 부족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식량으로

80억 사람이 먹을 수 있음에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일용할 양식으로는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욕심이

굶주리는 사람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굶어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굶어죽는 사람이 여전히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라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굶주리는 오천 명의 사람들을 어떻게 하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4:16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러자 제자들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라고

예수님께 항변하듯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까?

 

제자들이 고작이라고 여긴

어린 소년이 가져온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누어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세상에는 오천 명 먹을 것을

혼자 독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는 자신을 것을 내 놓아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오랜 가르침(교부들의 가르침)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주지 않으면 그대가 죽이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 기도는 우리 이웃의 아픔을

단지 그 사람의 아픔이 아닌

우리의 아픔으로 여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굶주림을

단지 그들의 굶주림으로만 여기지 말고

우리의 굶주림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가

나와는 상관없는 기도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절박하고 간절한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이번 주 아침묵상은 여기까지입니다.

 

한 주간도 삶의 현장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신앙과 기도가

나만을 위한 신앙과 기도가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신앙과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