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일 월요 아침묵상-하나님의 처방전(prescription)

 

마태복음 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우리의 몸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매일같이 적절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그만 두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면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이유는

일용할 양식은 내 힘으로,

한 국가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 모두가 일용할 양식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용서를 하는 것과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단순히 육신이 배부른 것으로만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행복하고 건강하려면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일용할 양식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는 것에 대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도

일용할 양식과 마찬가지입니다.

 

용서라는 것이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인격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하고 받는 것은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육신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라면,

죄의 용서는

영혼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귀한 축복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

 

마음이 맞는 사람과

직장에서 함께 일을 하는 것,

 

좋은 사람과 함께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축복이라 믿습니다.

 

확신하건데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입니다.

 

남편과 아내,

자식과 부모,

직장의 동료,

학교의 친구,

목사와 성도 그리고 이웃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신 사람과의 관계가

항상 사랑하고 위로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주변의 이웃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랑만 주고받으면 살아갑니까?

 

아니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항상 좋은 것만 주고받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아픔과 고통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사람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마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상처를 받아 마음이 아픈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입니다.

 

모든 인간의 사랑에는

항상 상처가 동반되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이 힘들어,

상처받는 것이 고통스러워

다시는 더 이상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하기를 포기합니다.

 

이미 결혼한 사람은

갈라서 남남이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목사나 교인들에게 상처를 받아

신앙생활을 포기하고는

가나안 교인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늘 상처를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식이로든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우정을 느끼고 있거나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더 이상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육체에 상처를 입으며 살아갑니다.

 

손이 베기도 하고,

팔이 부러지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합니다.

 

육체에 상처를 입었다고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육체의 상처나 병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난 상처나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무너지는 이유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마음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육체의 상처에 대해서

치료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여길 줄 안다면

마음도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느냐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장 중요한 일순위로 여겨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처방전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하는 것은

상한 감정과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하나님의 영적원리입니다.

 

용서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힘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기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며 살아야 하고

동시에 누군가를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