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금요일 아침묵상-우리의 죄
마태복음 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육신을 가진 우리는
매일같이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우리의 몸이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존재인 우리는
매일같이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우리의 영혼이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하루에도 수많은 실수와 잘못을
마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우리는 혼자 살 수 없고
불완전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사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따라서 용서받고 용서하는 문제는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와 함께
우리 인생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용서하고 용서 받는 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용서에 관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나(가족, 아는 사람)만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용서에 관한 기도에서도
반드시 주목해야 할 단어 역시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해야 할 죄는
나 자신만의 죄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지은 죄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비록 내가 지은 죄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짓는 죄에 대해
우리 역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사는 세상과 사회의
개인주의 사고방식은
나의 죄는 내 문제고
다른 사람의 죄는 그 사람의 문제라고
단정 짓게 구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모든 사회와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삶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문제는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문제는 곧
그 사람이 속한
가정의 문제이며,
그 사람이 속한
교회의 문제이며,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문제이고,
나아가
우리 전체의 문제입니다.
,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끔찍한 사건은
단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 정권 아래서 목사를 했던
마르틴 니묄러라는 목사가 쓴 글입니다.
“그들은(나치정권) 사회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사회주의가자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뒤에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뒤에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들이 기독교인인 나를 잡으러 왔다.
나를 살려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독일 히틀러 정권 아래서
엄청난 학살이 벌어지는데도
대부분의 교회는
세상의 폭력적인 권세 앞에서
철저하게 침묵 했습니다.
침묵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600만 유대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2.500만 명의 군인들이 죽어야 했습니다.
3,000만 명의 민간인이
억울하고 무고한 희생을 당했습니다.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총기와 관련된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무려 36만 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교회는
낙태나 동성애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당장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 싸우면서도
총기와 관련된 사건사고로 인해
매년 3만 명 이상이 죽고 있음에도
유독 총기 규제에 관해서는
기독교인들이 철저히 침묵만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교회건물에
총기가 난사되어도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학생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사고가 일어나도
총기를 규제하고 제한하는 일에는
마치 남의 일처럼 방관만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이
나에게, 내 가족, 내 교회에서만
일어나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치의 만행을 침묵으로 방관하는
독일교회와 목사들을 향해 본 회퍼 목사는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죄라며
히틀러 나치 정권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았습니다.
교회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악한 일 중의 하나는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세상의 모든 불행과 악행을
하나님의 뜻으로 넘기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신앙은 교회로 하여금
세상의 악한 지배자(권력자)와
악마의 편에 서게 만드는
매우 부적절한 신앙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보라고 합니다.
교회를 좀
긍정적으로 보라고 합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부정적으로 보는 것보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은 결코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믿음은
긍정의 힘이 아니라 바름의 힘입니다.
매사에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그리고 바르게 본 다음에
닥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야 말해선 안 됩니다.
무조건 은혜롭게 하자고 말해선 안 됩니다.
교회가 자꾸만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려는 노력은 포기하고
죽어서야만 가는 나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좋은 것만 좋은 것이라 말해야 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벌어지는
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보면서도
마치 자신과는 자신의 교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신앙생활 합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일어나는
세상과 사람들의 죄를 보면서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긴밀하고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안다면
그저 무관심하게
침묵만 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저지르는 범죄를 볼 때
사회가 저지르는 범죄를 볼 때,
그리고 그것을 책임져야 할 교회가
오히려 타락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것이 단지 그들만의 문제만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부패와 타락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용서는 모든 잘못 된 일을
없던 일로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무엇이 실수이고
무엇이 잘못된 일이고
무엇이 상처를 준 일이고
무엇이 악한 일인지를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정확히 분별하고 아는 것입니다.
용서는
잘못된 죄에 대해서는 분노하며
잘못된 치열하게 싸워야 하지만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해서는
보복과 복수의 눈이 아니라
연민과 긍휼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도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줄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죄 사함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죄 사함의 은혜가
나에게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이웃을 용서하려는
용기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서로 간에
용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오직 용서만이
죄의 악순환,
고통의 악순환,
상처의 악순환 등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 버리는 능력이며 힘입니다.
물론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격으로도,
지식으로도,
교리로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용서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지극히 영적인 일입니다.
날마다 기도하지 아니고서는
제대로 된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달라고
그 어떤 기도보다 절실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전히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소원을 놓고 기도하는 것처럼
절실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들이
곧 우리의 문제임을 깨닫고
세상의 악함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분노하게 하시고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보복과 복수보다는
연민과 긍휼 자비의 눈을 가지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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