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일 금요 아침묵상-예수님의 연약한 모습

 

마가복음 14:32-36 (개역개정, NIV)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2 They went to a place called Gethsemane, and Jesus said to his disciples, "Sit here while I pray."

33 He took Peter, James and John along with him, and he began to be deeply distressed and troubled.

34 "My soul is overwhelmed with sorrow to the point of death," he said to them. "Stay here and keep watch."

35 Going a little farther, he fell to the ground and prayed that if possible the hour might pass from him.

36 "Abba, Father," he said, "everything is possible for you.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산(감람산)에 올라가셔서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겟세마네에 오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기도할 동안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더 멀찍이 가셨습니다.

 

세 제자들과 함께 멀찍이 가시며

예수님은 매우 놀라며 괴로워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민이나 고통 괴로움을 드러내거나

말씀하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심히 놀라며 괴로워하셨다고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 혼자

마음속으로 놀라며

괴로워하신 것이 아닙니다.

 

함께 데리고 온 세 제자들에게

마음에 가지고 있는 고통을 털어 놓습니다.

 

마가복음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죽을 만큼 힘든 마음의 고통과 고민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마음을 고통을 드러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있을 것을 부탁하시고는

좀 더 외딴 곳으로 나아가셔서

홀로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4:35

그러고서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서,

될 수만 있으면 이 시간이 자기에게서

비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그처럼 놀라고 괴로워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난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할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미 세 번씩이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유월절 최후의 만찬을 통해

임박한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도대체 왜

갑자기 놀라며 괴로워하신 것일까요?

 

제자들이 그렇게 말려도

십자가 죽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도대체 왜 갑자기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일까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요?

 

육체적으로 받을

고난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요?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제자들의 무지와 배신 때문일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제자들에게 고민과 고통을 드러내시고

하나님께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 역시

연약한 인간의 몸을 지닌

육체의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요,(2:6)

그 영광의 광채로서(1:3)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셨기 때문에

장차 겪을 고통과 모욕과 죽음 앞에서

고민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약한 육체를 지닌 예수님은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픔을 느끼고,

몸에 상처가 나면

아파하시는 분이십니다.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할 때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민과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고 드러내신

그야말로 인간의 연약함을

그대로 다 겪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인간 예수님께서

장차 겪으실 고난과 모욕과 죽음을

이미 모두 알고 계셨으니

마음속에 두려움과 고통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본래 장차 닥칠 고통을 알면

더 두렵고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불이 뜨겁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불을 무서워하지만

불이 뜨겁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을 무서워하지 않고 덤빕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몰라서 무서웠던 것이,

그 실체를 알게 됨으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고통이

모르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나 고통보다는

훨씬 더 크고 일반적입니다.

 

육신을 가진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려는 십자가의 길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연약한 육체를 지닌 예수님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연약한 육체를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고민하고 괴로워하시는

예수님을 보면 매우 낯설어 합니다.

 

예수님답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인간의 연약한 모습 따위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의 연약한 인간적인 모습은

수치도 아니고 낯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스스로 연약한 인간이심을

사람들이 모르게 숨기고

감추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심히 놀라며 괴로워하신 것도

어쩌면 스스로 연약한 인간이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신 것도

어쩌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신 것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연약한 모습은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지만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를 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연약한 모습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욕심과 탐욕으로 인해

너무나 자주 무너지고 넘어지는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의 약점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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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