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일 수요 아침묵상-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기도

 

마가복음 14:32-36 (개역개정, NIV)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2 They went to a place called Gethsemane, and Jesus said to his disciples, "Sit here while I pray."

33 He took Peter, James and John along with him, and he began to be deeply distressed and troubled.

34 "My soul is overwhelmed with sorrow to the point of death," he said to them. "Stay here and keep watch."

35 Going a little farther, he fell to the ground and prayed that if possible the hour might pass from him.

36 "Abba, Father," he said, "everything is possible for you.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는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는

매우 힘들어 하셨습니다.

 

연약한 사람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고민에 빠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사람으로서 가지게 되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인해

절실한 심정으로 기도를 하십니다.

 

연약한 사람이기에 가지게 되는

두려움과 슬픔과 괴로움을 가지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수님의 기도는

할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의 잔을

자신에게서 옮겨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할 수만 있으면

이 모든 고난의 잔을 옮겨달라는

부탁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결국에는 당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연약한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었던

두려움과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간절한 기도를 통해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간절한 기도는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영적인 힘과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줍니다.

 

예수님의 기도에서 배워야 할 것은

기도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홀로 설 수 있어야 하며

정직하게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일대일로 대면하는 것이

기도의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교회의 기도에는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홀로 서는 기도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에 교회에서 행하는

다양한 기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함께 모여 통성 기도하는 것으로

기도생활을 대신해 버립니다.

 

물론 이웃이나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는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두려움이나 슬픔.

괴로움을 극복하는 영적싸움을 위한 기도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드리는 기도로만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집단으로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기도만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개인의 영적성숙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집단 심리에 의한 흥분에 그칠 수 있음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마치 소나무 뿌리라도 뽑을 기세로

목청이 떠나갈 듯 주여 삼창을 하고는

함께 모여 큰 목소리로 울부짖는 기도만이

간절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셔서

자신이 기도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게 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도는

기독교 신앙의 기도를

가장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도는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하나님을 통해 이루는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도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연약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영적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당신의 힘을 과시하는 도구나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더 없이 연약하기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섰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며

연약한 존재인가를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선 기도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확인하였기에

비로소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약한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힘입어

세상과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도를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어 내고 성취하게 만드는

영적인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도를

우상숭배자들의 기도로 왜곡시키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힘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고

내 소원을 이루는 수단은 더 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홀로 서서는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내가 얼마나 힘이 없으며,

나약하며, 무지하며, 연약한 존재인가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홀로 설 때

 

비로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몇 십분 기도한 것으로

성경말씀 몇 장 읽은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당히 종교생활 한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매일같이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힘과 능력 의지해서 살아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연약한 인간이기에 가졌던 두려움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연약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홀로 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연약한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기도와 말씀묵상으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서

내 스스로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