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화요일 아침묵상-집단심리, 군중신앙
마가복음 15:6-10 (새번역, NIV)
16 군인들이 예수를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공관이었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켰다.
17 그런 다음에 그들은 예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운 뒤에
18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면서, 저마다 인사하였다.
19 또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무릎을 꿇어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20 이렇게 예수를 희롱한 다음에, 그들은 자색 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도로 입혔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16 The soldiers led Jesus away into the palace (that is, the Praetorium) and called together the whole company of soldiers.
17 They put a purple robe on him, then twisted together a crown of thorns and set it on him.
18 And they began to call out to him, "Hail, king of the Jews!"
19 Again and again they struck him on the head with a staff and spit on him. Falling on their knees, they paid homage to him.
20 And when they had mocked him, they took off the purple robe and put his own clothes on him. Then they led him out to crucify him.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유대 군중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온 성이 떠나갈 듯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찬양하고 환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열렬히 환호하던 유대군중들은
불과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를 못 박아 죽이라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개인으로는 저지르기 힘든
잔인하고 비열한 일을
군대라는 군중심리에 사로잡혀서는
무죄한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고
모욕적인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유대 군중들이나 로마 병사들 모두
한 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죄를
집단으로 군중으로 모여서는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집단으로서 죄를 짓는 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집단이나 교회공동체나
더 나아가 국가나 민족이 하는 일이라면
항상 옳다고 여기는 생각에
의문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일이
정말 옳은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타인)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거나
예수님(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교인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게을리 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해야 할 것을
집단의 생각과 선택에
무조건 의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매우 심각한 죄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세상 집단의 흐름에
우리의 생각과 삶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아무런 생각 없이
자기 자신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남들이 다 한다고
나도 무조건 그렇게 하는 것은
나중에 집단이 저지르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죄까지도 용납하고
거기에 동참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세상 집단의 흐름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끊임없이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세 번의 조롱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대제사장의 뜰에서이고,
두 번째는 로마 병사들의 조롱이고,
세 번째는 십자가상에서의 조롱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조롱하는
세 번의 이야기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조롱하는
세 번의 사건은 모두
예수님의 왕 되심에 대한
조롱과 경멸이었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는
사람들의 조롱과 경멸에 대해
예수님은 그저 침묵하시며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기력하고 그저 침묵만 하는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은
더욱더 경멸과 조롱을 보냅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힘과 권세와 능력을 가진 왕에게는
머리를 숙이고
존경과 찬양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온유하며
심지어 조롱과 경멸에 대해서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무력해 보이는 왕에 대해서는
존경하기보다는 조롱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경쟁하지 말라는 것,
서로 사랑하라는 것,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
첫째가 되지 말고
꼴찌가 되어야 한다는 등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은
세상에서 조롱받기 십상입니다.
세상은 결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에 대해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경멸할 뿐입니다.
유대 군중들과 로마 병사들에게
무기력하게 침묵만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저들이 생각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군중들과 로마 병사들에게
무기력하게 침묵만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저들에게는 그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들에게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예수님이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는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세상과 사람을 섬기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부였던 어거스틴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형편없는 것보다
자신의 집이 형편없는 것을
더 고통스럽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는 것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
직장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
세상에서 더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나 아픔이 아니라,
세상 흐름에 따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아픔만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군중신앙의 결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군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대제사장들의
선동과 충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으소서”라고
입술을 열어 소리쳤던 장본인들은
바로 유대 군중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며
군중에게 조롱당하면서도
저들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저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느냐는 물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오늘 내 삶의 모습은 어떠한지
하나님 앞에서 홀로서서
진지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내 삶의 모습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내가 지어야 할 십자가를 발견하고
십자가를 믿음으로 지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는 것처럼
성도의 능력 또한
십자가를 능히 지는 삶에 있는 것이지
세속적인 축복에 있지 않음을
마음 깊이 명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의 풍조와 흐름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세상의 잘못된 풍조와 흐름에 대해서는
단호히 저항하며 거스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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