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일 수 아침묵상-아리마대 사람 요셉

 

마가복음 15:42-47 (개역개정, NIV)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42 It was Preparation Day (that is, the day before the Sabbath). So as evening approached,

43 Joseph of Arimathea, a prominent member of the Council, who was himself waiting for the kingdom of God, went boldly to Pilate and asked for Jesus' body.

44 Pilate was surprised to hear that he was already dead. Summoning the centurion, he asked him if Jesus had already died.

45 When he learned from the centurion that it was so, he gave the body to Joseph.

46 So Joseph bought some linen cloth, took down the body, wrapped it in the linen, and placed it in a tomb cut out of rock. Then he rolled a stone against the entrance of the tomb.

47 Mary Magdalene and Mary the mother of Joses saw where he was laid.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오랜 시간 고초를 겪으시고는

마침내 숨을 거두고 죽으셨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예수님의 시신을

빨리 장사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빨리 장사지내지 못하면,

로마병사들에 의해

새나 들짐승의 밥이 되도록

쓰레기 더미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앞장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아침에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을 때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를

안식일로 여겼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십자가 처형에 이르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도

안식일에 지켜야 할 규례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는

중요한 규례 가운데 하나는

안식일에는 시체와 접촉하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선 듯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안식일 규례를 어겼다는 이유로

또 다른 종교재판에

넘겨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로마 제국에 반역죄를 지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죄수는

로마 총독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야만

시신을 가져다가

장례를 거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다가는

예수님과 같은 반역자 무리로

여겨질 것을 두려워했던 나머지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내려고

선 듯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 총독을 찾아 가서는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리마대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동네였습니다.

 

마가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유대의 최고 권력 기관이었던

산헤드린 의원으로서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크게 감명을 받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마태복음에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해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57

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출신으로 요셉이라고 하는

한 부자가 왔다.

그도 역시 예수의 제자이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비록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그가 예수님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대 사람이 무서워

제자라는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라고

요한복음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일찍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열두 제자들처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진 못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자신의 정체를 숨겼왔던 이유는

당시 예수님을 극렬히 반대했던

유대 권력자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산헤드린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도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해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음을 드러내지 않고

지금까지 숨겨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열두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용기가 없는 비겁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라는

자신의 정체를 오랫동안 감추었던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채로 매달려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모두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피해

도망치고 아무도 없을 때였습니다.

 

가장 절박하고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냅니다.

 

어쩌면 더더욱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숨기고 해야 할 때에

오히려 그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누구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낼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던 때에

 

빌라도를 찾아 가서는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요청합니다.

 

마가는 이런 요셉의 행동에 대해

당돌히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감히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만이

용기를 내어 나섰다는 뜻입니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내기 위해 요청하는 데

왜 당돌하게 여길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습니까?

 

물론 앞서 설명했던

두 가지 큰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로마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하는 것은

 

지금까지 감추었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동안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는

더더욱 대담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것은

자신의 명예, 정치생명,

그리고 목숨을 건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려는 십자가의 신앙은

가장 결정적이고 위험한 순간에

자신의 전부를 건 용기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꼭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더 이상 피하거나 숨지 않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당돌할 정도의 용기를 낼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