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일 금 아침묵상-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마가복음 1617(새번역, NIV)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17 And these signs will accompany those who believe: In my name they will drive out demons; they will speak in new tongues;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장차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하신 표적은

그야말로 놀랍고 신비한 이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 아침 묵상에서도

자세하게 설명을 드렸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표적들을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적에 대해 분명히 가르쳐 주시길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으로

믿음의 증거(표적)를 삼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시험하거나

유혹하기 위한 것이라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시니라

 

마태복음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받은 사람들까지도 홀릴 것이다.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의 악한 방법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는 자들에게 나타난다고 하신 표적들은

신비하고 놀라운 표적들을 보고서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표적은

제자들이 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표적이 따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표적을 보고

표적 때문에 믿는 것과

복음을 믿기에

표적이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에게 나타난다고 하신

표적들이 무엇을 상징하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으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귀신이란

단순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악한 귀신(evil spirits)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귀신이란

사람의 영과 육과 혼을 지배하는

세상의 모든 악한 권세나 힘을 통틀어

악한 귀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잘못된 이념이나 사상일수도 있고,

사람의 육신을 중독에 빠지게 하는

도박, 마약, , 약물, , 쾌락일 수도 있고,

사람의 영혼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욕심(탐욕)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악한 귀신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가장 경계하신 귀신(demon)

맘몬(mammon)입니다.

 

재물의 귀신 맘몬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사람의 영과 육과 혼을 지배하였던

가장 강력한 귀신입니다.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재물 귀신(맘몬)의 힘이

얼마나 크고 대단하냐면

더 많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조차 이용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영과 육과 혼을 지배하였던

모든 악한 귀신(사탄)의 권세를

예수님의 복음으로 물리치게 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에게 따른다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다는 표적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새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부 교회와 교인들은 방언을

인간 세상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천상에서 쓰는 성령의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새 방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 당장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는 것으로만 여깁니다.

 

심지어 신비한 언어로 말하는

새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는

교인들과 목사들도 있습니다.

 

물론 방언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당장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하고 이상한 소리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수많은 방언 가운데

지극히 일부분의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방언을

인간들이 사용하지 않는

신비하고 이상한 언어로만 여기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방언을 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의 말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성령의 말만

하라는 뜻일까요?

 

사람의 말과는 전혀 다른

성령의 말이라는 것이

정말 따로 있기는 한 것일까요?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하고 이상한 성령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의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내용의 말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성령이 충만함을 받아

여러 나라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4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여러 나라 언어로 말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2:11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일들을

우리 각자의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소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 들을

다른 나라의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방언이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새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탐욕에 속했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면

그 말하는 내용도 변하게 됩니다.

 

이처럼 새 방언이 상징하는 것은

신비하고 이상한 언어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하는 내용에 초점이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자기자랑, 시기, 질투, 원망, 불평

미워하는 말들만 했다면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저들이 성령 충만하기 전까지는

세상권세와 자리에만 욕심을 내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전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새 방언의 역사는 없다고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모든 악한 권세들을 물리치게 하시고

이전과는 다른 말을 하며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