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금요일 아침묵상-사랑이 없는 비판
로마서 12: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Rom.12:2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한국교회와 이민 한인교회가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네 파로 나뉘어져
서로 대립하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게바는 아람어로
바위를 뜻하는 단어로서
베드로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모두
한 분이신 하나님
한 분이신 예수님
한 분이신 성령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고린도 교회처럼
모든 교인들을 똑같은 생각을 하며
교회로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을 같이 살아 온
부부 사이에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것처럼
교회로 모이는 교인들 역시
믿음에 대해
교회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묵상에서
한국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을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교회와 목사를 위한 일이라면
열성적으로 무조건 믿고 따르는
아멘파 교인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교회에 실망한 나머지
교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교회를 비판하는 아웃사이더나
더 이상 교회로 모이지 않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가나안 교인들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교회공동체는 어떻게 됐든 상관하지 않고
개인적인 신앙에만 안주하는
나홀로 교인들입니다.
첫 번째
아멘파 교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멘파 교인들의
헌신과 열심히 있었기에
오늘날 교회가 지금과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지식이 없는
교인들의 열심과 열성은
일부(?) 타락한 목사들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너무나 쉽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이 특별했던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을 가지고
그가 했던 일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복음을 억압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의 경우처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이
열정과 열심만 있는 신앙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가장 심각하게
훼방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두 번째 부류는
교회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아웃사이더 교인들이나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가나안 교인들입니다.
이런 부류의 교인들은
목사나 아멘파 교인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교인들입니다.
물론 교회에는
열정적인 아멘파 교인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잘못된 신앙이나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줄 아는
비판자들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가
바른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목사들은 유난히
비판받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심지어 목사를 비판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이라 여기는
목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멘파 교인들 역시
목사를 비판하는 것은
곧 교회를 비판하는 것이고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예수님을 비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목사라고 해도
완벽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목사라도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는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의 잘못된 생각이나
잘못된 교회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지적)하기라도 하면
마치 당장이라도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 마귀처럼 여깁니다.
왜 목사들이 이렇게 합니까?
자신들이 생각하고
자신들이 믿는 것에는
조금의 오류도 없다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들이 믿는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잘못된 확신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태평양 바다에서 퍼 올린
한 바가지 물보다도 적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에 관한 뜻은
바닷가 해변에서 주어올린
한 줌의 모래보다도 적습니다.
따라서 내가 아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전부라는
잘못된 그리고 위험한 생각을 버리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배우고 알아가려는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설교가 끝난 다음에
설교에 대한 질문 시간이 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는 교인들에게
매번 빼놓지 않고
질문이 있으시냐고 묻습니다.
막상 질문이 있냐고 묻지만
아무런 질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주 가끔가다
질문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교 후에 질문을 받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질문이 있습니까?
묻습니다.
제가 고집스럽게
설교 후에 질문이 있냐고 묻는 것은
교인들이 질문을 하던 하지 않던
목사의 설교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흔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면
선포한 그대로 믿어야지
선포한 것에 대해서
그 어떤 의문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매우 심각한 불신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목사가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는 하지만
목사도 사람인지라 목사의 설교에는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목사의 설교라고 하지만
목사의 설교에도
의문을 가질 수 있고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지
목사의 설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가진 믿음에도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확신하고 믿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인가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서 12: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려면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는
비판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믿기 이전에
진짜와 가짜 가르침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믿음 이전에 반드시 가져야 하는
지혜입니다.
잘못된 믿음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잘못된 종교지도자를 따르고
잘못된 신앙과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예 믿음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 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위해서
바르게 비판할 줄 아는 교인들이
교회에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나와 다른 주장이나 생각
믿음을 가진 교인들을
미워하고 비난하려고만 합니다.
또한 교회의 문제점을
분별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교회도 사랑하지 않고
교인들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만
자꾸만 지적하고 들추는 것은
교회를 바르게 변화시키기 보다는
교인들에게도 상처만 줍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매우 위험한 일이 됩니다.
교회에서 그리고 교인들에게
사랑이 없는 비판은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비판은
결국 자기 자신을
교회의 아웃사이더로 만들거나
아예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가나안 교인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종교 행위가
나의 의를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고 닮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