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일 수 아침묵상-신앙공동체로서 교회 


고린도저서 1225-27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5 so that there should be no division in the body, but that its parts should have equal concern for each other.

26 If one part suffers, every part suffers with it; if one part is honored, every part rejoices with it.

27 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특별하게 계획하시고 만드신

매우 중요한 수단이며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과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과 사람을 걱정해 주고

저들의 타락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교회가 세상의 타락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기보다

세상이 교회의 타락을

더 걱정하고 안타까워합니다.

 

교회에 대한

세상의 걱정과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별로 나아질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회와 교인들은

아무런 변화와 갱신도 시도하지 않은 채

타락한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의 타락에 실망한

일부 교인들 가운데에는

더 이상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며

절망에 빠져서는

교회와 신앙을 포기합니다.

 

교회의 타락한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교회의 타락한 현실에 절망하여

교회와 신앙을 포기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절망하여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통째로

타락한 목사들에게 넘겨버리는

가장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 교회가

많은 문제와 한계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데 있어

교회보다 더 중요한 곳은

없다고 믿습니다.

 

교회보다 더 열심히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려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만큼

이기적인 본성을 극복하여

자기 밖을 향하여

봉사하고 나누려고 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만큼

진리를 간절히 추구하며

세상과 인간에 대한

참된 진리를 소유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한국교회의 타락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인정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한국교회를

존귀하게 여기며 대단히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절대로 교회개혁과 신앙갱신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일과

교회를 개혁하고 신앙을 갱신하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결코 따로따로 일 수가 없습니다.

 

교회를 향한 사랑은

반드시 교회개혁과 신앙갱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개혁과 신앙갱신은

교회와 신앙에 대한

비판이나 조롱 또는 절망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고,

교회를 사랑하는 교인이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교회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으려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어떤 일이 생겨도

다른 교인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도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교회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그저 자기 혼자

신앙생활 잘하는 것에만 만족하며

교회를 다니려고 합니다.

 

교회나 다른 교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니

당연히 교회에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이런 경향의 교인들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다보니

신앙을 통해 그저 살아가는데

위로와 힘을 얻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교회와 신앙이란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는

종교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매우 위험한 믿음입니다.

 

이런 식의 개인주의 신앙은

교회와 신앙의 본질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왜곡된 신앙입니다.

 

최초의 교회는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교회는 공동체로 시작했고

공동체를 통해 성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앞세운다면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공동체를 벗어나서는

그 어떤 형태나 신앙도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사람의 성장 과정을

3단계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의존적인 단계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전적으로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혼자서 독립하여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의존적인 단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독립적인 단계입니다.

 

부모의 돌봄을 통해

성장을 마치게 되면

의존적 단계에서 독립적 단계로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기 몫을 살아내려면

자신을 돌봐주던 부모로부터

반드시 독립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독립적 단계로

성장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인

상호의존적 단계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한 순간조차도

나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농부가 없이

어떻게 매일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옷 만드는 사람이 없이

어떻게 매일같이 옷을 입을 수 있으며

 

건축가가 없이

어떻게 매일같이 집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부모 없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너 없이 나는 설 수 없고,

너 없이 나는 존재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진실이며

인생의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독립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독립을 넘어

상대방의 필요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도움을 받아들일 줄 아는

상호의존적인 삶을

살아가는 단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완벽하게 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가

다 그러합니다.

 

식물은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로 호흡하고

사람은 식물이 내뿜는

산소로 호흡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고 훈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교회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공동체(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교회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2:25-27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해 가르치기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가진 공동체로서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교회를 도무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지닌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혁하고

신앙을 갱신하는 중요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라는

공동체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나 영향을 주지 못하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서

아무런 도움이나 영향도 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믿음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주 아침묵상은 여기까지입니다.

 

기쁨과 감사로 가득한

Thanksgiving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서로 돕고 섬기는

그리스도의 한 몸을 만들어가는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