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화요일 - 개인주의 신앙의 문제
고린도후서 9장 8-9절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8 And God is able to make all grace abound to you, so that in all things at all times, having all that you need, you will abound in every good work.
9 As it is written: "He has scattered abroad his gifts to the poor; his righteousness endures forever."
성경에서 교회(에클레시아)란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는
결코 건물이나 장소가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는
종교제도나 시스템이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는
종교지도자들이 만든 교리가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본질은
신앙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길은
교회라는 공동체로 부르심을 입은 교인들이
교회다워 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한국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교회와 목사를 위한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열성적인 아멘파 교인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교회에 실망한 나머지
교회에 나가지(모이지) 않으면서
교회를 비난만 하는
가나안 교인들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교회가 어떻게 됐든 무슨 일을 하든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개인주의 교인들입니다.
첫 번째 부류인
열성적인 아멘파 교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열정적인 아멘파 교인들의
교회를 위한 열정과 헌신과 봉사는
분명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소중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과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지식이 없이
그저 맹목적인 열정과 헌신은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멀어진다면
열정적일수록, 열심히 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따라서 열정과 헌신 이전에
교회를 위한 나의 열정과 헌신이
정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항상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부류인
비난만 하는 가나안 교인들의 문제는
무엇이니까?
비록 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앙공동체라고는 하지만
교회 역시 성화(sanctification)되지 않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신앙 공동체이기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문제점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교인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문제를
앞장서 비판하는 교인들을 보면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비판이기보다는
자신과 다른 주장이나 생각을 가진 교인들을
미워하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념과 신앙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신념은 영어로
will, conviction이라고 할 수 있다면,
신앙은 영어로
faith 또는 belief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념은 자기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신앙은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혼동하니까
모든 것을 자기 생각과 기준에서
판단하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자기 생각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신앙(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틀린 것이라고,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영적폭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린다는
서양속담이 있습니다.
교회의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잘못된 것을 비판하다
자신의 신앙마저도 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무리 옳은 비판이라고 할지라도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하는 교인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비판은
스스로를 교회의 아웃사이더가 되거나
가나안 교인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아웃사이더나 가나안 교인들은
절대로 교회를 바꿀 수 없습니다.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교회를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류인
개인주의 교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개인주의 성향의 교인들은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가장 평범하고 온순한 교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에게 피해만 없다면
교회가 어떻게 하든 어떻게 되든
별로 상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신앙에만 만족하는 교인들은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되던
다른 교인이 어떻게 되던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나 자기 사업 또는
자기 가족들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교인들에게
교회와 신앙이란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종교적 도구라고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매우 위험한 믿음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내가 소원하고 바라는 바를
하나님을 통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를 통해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통해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기복주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기복주의 신앙은
겉으로는 신앙을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본질상 이것은 우상숭배이며 미신입니다.
미신과 신앙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신의 뜻이나 계획을
자신이 드린 정성이나 재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우상숭배이며 미신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바꿀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고 합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소원과 간구에
응답하신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소원과 간구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지 않을 때에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로또에 당첨 시켜달라고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로또에
당첨 시켜 주시지 않습니다.
슬롯머신 붙잡고
아무리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잭팟 터지게 하지 않습니다.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아무리 간절히 기도하고 헌금한다고
하나님께서
무조건 시험에 합격시키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복을 통해
우리의 이웃을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남을 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복을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의 약속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은
물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복을
우리를 통해 이웃과 세상으로
흘려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와 교인들을 통해
이웃과 세상을 향해
흘러넘치게 하길 원하십니다.
은혜와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정말 나에게 은혜가 되고
복이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받은 복을 혼자서만 누리지 않고
그것을 나눌 때 이루어집니다.
고린도후서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시는
이유에 대해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은혜를 통해
세상과 이웃을 위해
선한 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나눈다고 사라지고
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나눌수록 더 채워지는 복이며
나눌수록 더 커지는 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나누지 않고 혼자 독식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변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혼자 독식하고 독점하는 순간
미움과 시기와 원망과 불평과 불화가
더하여지게 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나누지 않고 혼자서 누리게 되면
복이 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나누지 않고 쌓아만 두면
더 이상 복이 아니라 짐이 되고 맙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자신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과 이웃을 향해 나누지 않습니다.
세상과 이웃을 향해
나누지 못하였으니까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복인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공부해서 남을 도울 수 있어야
공부 잘하는 게
복인 줄 알 수 있습니다.
돈을 벌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풀고 나눌 수 있어야
내가 번 돈이 복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약한 사람을 도와봐야
내가 누리는 건강이
복인 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과 이웃을 돕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니까
내가 누리고 가진 것으로
감사하지도 못하고
만족하지도 못하고
기뻐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신앙공동체가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교회는 공동체로 시작했고
공동체를 통해 성장했습니다.
공동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이야 어찌됐든
남이야 어찌됐든 상관하지 않는
개인주의 신앙의 교인들은
교회의 본질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의 기도】
교회를 통해 교인들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구원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