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금요일–실용주의 신앙의 문제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교회가 양적 성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서 생겨난
심각한 영적 타락이
교회에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라드 윌슨 목사는
“탕자 교회”라는 자신의 책에서
양적 성장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여기는 교회들은
실용주의와 고객중심주의라는
두 가지 가치에 의해
교회가 운영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실용주의와 고객중심주의는
결코 성경의 가르침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용주의와 고객중심주의는
복음에 반하는
잘못된 가치와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제라드 윌슨 목사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양적성장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 순간부터
교회는 실용주의라는
영적 타락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서 실용주의는
실용적이라는 단어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실용적이라는 것은
삶에서 꼭 필요하고 쓸모 있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한다면
실용주의(pragmatism)는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용주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우리 속담으로는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과
도로 가든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을 들 수 있습니다.
오래전 한국 인천에서 목회할 때
근처에 있던 대형교회에서
총동원 전도 주일이라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 교회는 총동원 전도 주일로
대형 교회로 성장한 교회였으며
한국교회에 총동원 전도 주일을
대대적으로 유행시킨 교회였습니다.
총동원 전도 주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남다른 노하우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가 총동원 전도주일을 위해
실시했던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 교회는 총동원 전도 주일에
50명 이상을 데리고 오는 교인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보내주고,
가장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 교인에게는
소나타 승용차를 상으로 준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 총동원 전도 주일에
가장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 교인은
무려 103명을 데리고 집사님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집사님이 간증집회를 다니며
자신이 전도 왕이 된 비결을 공개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총동원 전도 주일에 데리고 온 비결에 대해
103명 가운데 70명은
하루 일당 3만원씩을 주기로 하고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생전 처음 교회를 나오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영혼을 구원하는데
그깟 일당 3만원이 대수냐는 것입니다.
교회 나오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일당 3만원을 준다고 하면
교회에 기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지인이나 친척들이었으며
이날 데리고 온 사람들 중에는
다른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양적 성장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는 교회로서는
50명을 데리고 온 사람에게
수 백 만원을 들여 성지순례를 보내주고,
가장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 교인에게는
소나타 승용차를 상으로 주는 것이
대단히 실용적인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 교인들이
총동원 전도 주일에 새로 데리고 온 사람들이
무려 천 명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로는 오히려
적은 교회 재정을 사용하고서
원하는 목적을 충분히 초과 달성한
지극히 실용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또한 103명 가운데 70명을
3만원의 일당을 주고 데리고 온 집사님 역시
대단히 실용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교회로부터 전도 왕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소나타 승용차를 상으로 받았으니
결코 손해 본 장사가 아니라
크게 남는 장사를 했습니다.
게다가 전도 왕으로 알려져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여러 교회들을 다니며 간증집회를 하며
강사비를 받고 살아갈 수 있는
교계의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실용주의 사고방식은
결과만 좋기만 하면
수단과 방법에 문제가 있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실용주의 사고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실시하는 수단이나 방법이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래서 효과가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고
효과가 없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물론 세상에는
실용주의 사고방식이 필요한 분야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실용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성경의 가르침은
실용주의와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 데
일부는 길가에 떨어지고,
일부는 자갈밭에 떨어지고,
일부는 가시덤불 사이에 떨어지고,
일부만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실용주의자들은
이런 식으로 씨를 뿌리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미리
어떤 땅에 씨를 뿌려야 할지 살펴보고
가장 좋은 땅에만
씨를 뿌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뿌리는 씨에
유전자 조작을 해서라도
더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원하는 목적과 결과를 얻을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괜찮다는 실용주의는
매우 심각한 기독교 신앙의 변질과 왜곡
그리고 타락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기독교 신앙은
교인들의 꿈이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나 도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는 하나님을 이용하고
교인들이 신앙을 이용해
비전이라고 포장된 목사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결과에 초점을 두거나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마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실용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결과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결과와
모든 심판과
모든 종말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기 위해
교인들에게 승용차를 상으로 주는 방법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면
그 방법은 대단히
실용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용적인 방법이라고
교회마다 그대로 베껴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 건물로 불러 모으기만 한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갈수록 교회가
실용주의 방식에 빠져든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 빠져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분명한 증거입니다.
효과가 좋으면, 결과가 좋으면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은
결코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실용주의는 철저하게
반 복음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효과,
더 많은 사람,
더 능력 있는 사람,
더 유명한 사람,
더 높은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실용주의는
작은 사람,
약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대치(반대)되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정말
예수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효과적인 수단이나
실용적인 방법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정직한 수단이며 방법인지
무엇이 정의로운 수단이며 방법인지
무엇이 올바른 수단이며 방법인가를
그 어떤 것보다 먼저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우리교회가 지금보다는
교인들의 숫자나
교회 재정의 규모가
한참은 더 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목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나 목적을
교인 숫자 늘이는 데 초점을 두고
온갖 수단 방법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교인들 숫자가
제 기대대로 늘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을 것입니다.
교인들이 불편해 해도
마땅히 전해야 할 설교를 할 것이며,
올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물을 것입니다.
물론 결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에 집착하는 대신
주어진 하루하루라는 과정에 충실하며
목사는 목회를 하고
교인들은 신앙생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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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로 2019년
아침묵상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2019년 한 해 동안도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부족한 목사가 보내드린
아침 묵상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주위를 돌아 볼 수 있는 성탄절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2020년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오늘의 기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살기보다
주어진 하루하루라는 과정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