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6일 월요-고객 vs 그리스도인

 

 

사도행전 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Then Barnabas went to Tarsus to look for Saul, and when he found him, he brought him to Antioch. So for a whole year Barnabas and Saul met with the church and taught great numbers of people. The disciples were called Christians first at Antioch.

 

 

2020년 새로운 한 해가

또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2020년 새해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아침묵상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부터 2020

자유교회 아침묵상을 시작합니다.

 

자유교회 아침묵상은

성경말씀을 통해

교회의 본질과 믿음에 대해 고민하며

한국교회의 개혁과 믿음의 갱신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2020년 새해에도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깨닫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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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은 다 알지만

정작 목사와 교인들만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점점 기업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오늘날 교회가 기업이 되고 있으며,

교회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잘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 안에 있는

목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가 기업이 되고 있으며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럼 언제부터 교회는

기업이 되기 시작했을까요?

 

교회가 기업이 되고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교회가 양적(수적) 성장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와 목적으로

여기면서 부터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양적 성장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와 목적으로 삼게 되었습니까?

 

물론 여기에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든다면,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서로 협력하기 보다는

교인 숫자를 두고

교단마다 교회마다 경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래의 모습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협동, 보편성과 일치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교회는

한 분이신 하나님,

한 분이신 예수님,

한 분이신 성령님을 믿기에

 

모든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공통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타락과 부패로

교회는 끊임없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타락과 부패에 저항하며

종교개혁을 기치로 내세운

프로테스탄트(개신교)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을 기치로 내세운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교회는

종교개혁자들마다 주장하는 교리의 차이로 인해

수없이 많은 교파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등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통합하기 보다는

새로운 교파로 분열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33,000개 이상의 개신교 교파가 있으며

매년 300여개의 교파가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분열이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신교회의 분열은

폭발적인 교회의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민 교회 역시

끊임없는 분열을 통해

폭발적인 교회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성장의 이면에는

매우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개신교회의 끊임없는 분열은

자기 교파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더 많은 목회자를 필요했으면

더 많은 목회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허가 신학교들이 난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돈만 주면

6개월 속성으로 목사 안수까지 받을 수 있는

목회자 양성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수없이 많이 생겨난 교단과 교회는

수없이 많은 교단과 교회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시대를 열었습니다.

 

교파의 분열과 교회의 경쟁은

교인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넓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이 생겨난 교단과 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원하는 교단과 교회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교인들에게 교회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많은 학원들이나

마켓에 진열된 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에게

자신이 다닐 교회를 선택하는 것은

백화점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다닐 교회를 선택하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니는 것은

이젠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교회쇼핑이라고 합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를 맞이한 교회는

구도자의 길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교회의 명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를 맞이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복음의 원리로는

더 이상 교회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를 맞이한 교회는

교회마다 더 많은 교인들을 얻기 위해서는

또는 생존을 위한 교인들을 얻기 위해서라도

치열한 경쟁에 뛰어 들어야 했습니다.

 

무한 경쟁 시대의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무한 경쟁 시대의 전도는

오로지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 교회로 끌어 모으는 것을

전도라고 변질시키고 포장했습니다.

 

무한 경쟁 시대의 교회는

교인들에게 매력적인 종교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업이 된 교회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종교 비즈니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기업이 되고

종교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서부터

목사는 더 이상 성직자가 아니라

교회라는 기업의 CEO가 되었습니다.

 

교인들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종교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customer)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목사는

더 많은 고객들을 끌어 모아

교회라는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유능한 CEO가 되어야 합니다.

 

 

무한 경쟁 시대의 교회에서

목사의 신학이나 인격이나 성품과 같은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오늘날 목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고 있습니다.

 

CEO가 된 목사는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인들을 다른 교회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프로그램과 행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내면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기획한 예배나 프로그램이

더 많은 교인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실용주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지 무한경쟁 시대에

CEO로 변신한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인들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경쟁 속에서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보다는

스스로 고객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보다

고객이 되길 원하는 교인들은

교회와 목사에게 바라는 것이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고객이 되어버린 교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기독교 신앙의 진리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지옥의 불행을 피할 수 있는

보험증서가 되어 주길 원합니다.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을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전능하다는 신을 제공해 주길 원합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기 성찰을 도와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자신의 삶을 성찰 하게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자주

자기 자신을 성찰 하다보면

선한 사람이 되어

세상사는 일에 뒤쳐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모든 교단과 교파와 교회들이

양적 성장을 교회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무한 경쟁에 뛰어들면서 만들어 낸

심각한 부작용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넓고 편한 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좁고 불편한 길을 가는

구도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자발적으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길도 아니며

쉬운 선택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인을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것이 목적이라면

교인이나 고객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한다면

교인이나 고객에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2020년 한 해를 보내며

고객으로 손님으로 교회를 다니기 보다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교회를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오늘의 기도

 

교인으로 만족하거나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