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9일 목요-만인 제사장2

 

 

베드로전서 2:9-10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9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a people belonging to God, that you may declare the prais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

10 Once you were not a people, but now you are the people of God; once you had not received mercy, but now you have received mercy.

 

 

종교 개혁 이전까지는

사제가 하는 교회 일만을

성직이라고 했으며

사제들만을 성직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사제가 하는 교회 일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교인들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직업을 성직이라 여깁니다.

 

따라서 모든 교인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직자(제사장)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만인 제사장 교리입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만인 제사장 신학과 신앙 이전에는

성경은 오직 사제들만 읽을 수 있고

일반 교인들은 마음대로

성경을 읽는 것이 제한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성경은

일반인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던

라틴어(로마어)로만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반 교인들은

성경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라틴어를 아는

일반 교인들이라고 해도

성경을 함부로 읽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사제의 허락 없이

함부로 성경을 읽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처형을 당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신학을 배우지 않는 교인들이

함부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성경의 거룩함을 훼손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미사에서

사제가 읽어주는 성경낭독도

라틴어로 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교인들은

사제가 아무리 성경을 읽어준다고 해도

그 뜻도 모른 채

무조건 듣기만 해야 했습니다.

 

당시 교인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사제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이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사제가 하는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교인들에게

사제의 종교적 권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결과 중세 교회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교황의 성경해석에는

그 어떤 오류나 잘못도 없다는

교황무오설과 같은

말도 안 되는 교리를 만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가장 타락하고 부패했다는

유대교 신앙보다도

더 타락한 신앙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가톨릭교회는

교황무오설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종교 개혁자들은

교인들로 하여금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금속활자의 발명과

인쇄술의 혁신적인 기술 발전으로

누구나 성경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이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고,

교인들도 원하기만 하면

성경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부터

사제들만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사제들의 절대적 종교적 권위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 말씀을

누가 더 바르게 잘 설명하고

누가 더 바르게 해석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것 외에도

만인 제사장 신학과 신앙이 가져온

교회의 변화는 엄청납니다.

 

이전까지 교회는

교인들이 사제를 섬기는 교회였지만

이제는 목사가 교인들을 섬기는

교회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전까지는

사제에게만 허락되었던

교회에 대한 모든 종교적 권한을

교인들과 함께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사제가 아니라

신학을 공부해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라는 새로운 직분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목사와 함께

교회를 섬기는 교인들에게도

장로와 권사 집사와 같은 직분을 부여하여

목사와 협력하여 함께

교회를 섬기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교인들을

거룩한 제사장 성직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만인 제사장 신앙은

타락하고 부패한 중세 교회를

성경의 가르치는 교회로 바꾸기 위한

종교 개혁자들의

매우 중요한 신학이며 신앙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개신교회는

종교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던

만인 제사장 신학과 신앙은

거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커질수록

교회는 예전 중세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의

종교적 권한과 권위는

가톨릭교회의 사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권한과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학을 공부한 목사에게

우선적으로 성경에 대한 해석과

설교에 대한 권한을 주는 것은

분명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사의 성경해석이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겨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가톨릭교회의

교황 무오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목사 무오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만 명의 교인들을 목회하는

아무리 유명한 목사라고 해도

욕구와 욕심을 가진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유명 목사의 설교라고 할지라도

무조건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목사를 믿는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목사의 설교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말이냐 하면

물론 목사의 설교에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사의 설교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목사의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

이것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목사의 해석이라고 들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목사의 설교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듣고 믿는 것은

매우 심각한 신앙의 왜곡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묵상할 수 있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인들로 하여금

목사들의 잘못된 성경해석이나 적용을

비판할 수 있고 견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교인들이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목사의 성경 해석을 비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정직한 마음과 믿음만 있다면

최소한 목사의 설교가

교인들을 미혹하려는 그럴듯한 거짓 설교인지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는 진짜 설교인지 정도는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13-15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오늘의 기도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존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