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3-14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3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by men.
14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교인들이 교회로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세상으로 흩어지기 위함입니다.
교회로 모이기만 할 줄 알지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세상으로 흩어지지 않는 교회는
결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 흩어져
세상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교회와 크리스천의 사명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마태복음 5:13-1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에게
너희는 교회의 소금이다.
너희는 교회의 빛이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소금과 빛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라면
세상은 우리가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소금과 같은 신앙,
빛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예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이 사명을 감당하는 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예수님의 명령이자,
기독교인의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더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 소금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음식의 맛을 내는 것과 함께
음식이 썩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 되어
살맛을 잃어버린 세상에 살맛을 제공하고
부패하고 있는 세상이
더는 썩지 않도록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떻게 합니까?
세상은 부패하고 타락했으니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거룩한 교회로
피신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는 세상을 향해서는
타락한 너희들은 지옥에나 가라고 합니다.
소금이 고기에 뿌려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소금이 그 효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당장 썩을 것 같은 고기 속으로 들어가
고기에 녹아 들어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자꾸만 도망치려 하지 말고
세상과 맞장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소금이 용해되어
고기가 썩는 것을 막는 것처럼
세상이 부패하고 썩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소금기를 잃은 교회와 교인들은
세상을 살리고 썩지 않게 막기는커녕
자신들이 모인 교회조차
부패하고 썩어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선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가장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는 세상보다 더
세속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하다는 것은
교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종교적 외식과 같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은
세상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세상과 다른 질서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예언처럼
오늘날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이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처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어두움 가운데 있다고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분명 세상은 악합니다.
세상은 병들었습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은 다 어둡기에,
세상은 다 병들었기에,
세상은 다 죄로 가득 차 있기에
어두워도 어두운 줄 모르고,
병이 들었어도 병이 들었는지 모르고,
죄로 가득 차 있어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어두움을 밝히게 되자 세상은 비로소
어두운 곳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은
세상의 빛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대부분의 교인들은
세상은 어둡고 죄악이 가득한 곳이기에
가까이하지 말고
되도록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교회를 다니고 신앙 생활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교회가 믿음을 충전하는 곳이라면,
세상은 교회에서 충전한 믿음으로
믿음의 빛을 비추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믿음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곳이라면
세상은 교회에서 연습하고 훈련한 믿음으로
실전을 치러야 하는 믿음의 싸움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을 위한
빛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빛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물론 어두움을 밝히는 것이지만
어두움을 밝히므로
어두움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빛이 있기에 어둠이
어둠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빛이 아예 없으면
어두워도 어두운 줄 모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기적입니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과
남을 섬기고 희생하는 이타심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이기적인 인간에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남을 섬기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자기만 알고 위하는 이기심과
남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이타심을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세상은 어둡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둠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세상을 위한
빛의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두움에 빠져있음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고
자랑해야 할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교회는 믿음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믿음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곳입니다.
믿음을 자랑해야 하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내가 일하는 일터입니다.
내가 경영하는 사업체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교회 중심이 아니라
세상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모이는 교회 중심이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는
세상으로 흩어지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는
세상으로 흩어져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과는 다른 것을 소원하고,
세상과는 다른 성공을 말하고,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말하고,
세상이 추구하는 복과는
전혀 다른 복이 있음을
당당히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