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화요-세리와 죄인의 친구

 

누가복음 7:33-34

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3 For John the Baptist came neither eating bread nor drinking wine, and you say, 'He has a demon.'

34 The Son of Man came eating and drinking, and you say, 'Here is a glutton and a drunkard, a friend of tax collectors and "sinners." '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경건하고 신실한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스스로 자신들을 그 누구보다

경건하고 신실하다고 여겼던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신앙과 믿음이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착각은

자신들이 철저히 지키는 종교 행위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한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누구보다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목사와 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지극히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말씀은

자신들이 기준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판단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타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미리 보내실 것을 예고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실제로 세례 요한은

광야(사막)에서 살면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비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그가 사는 광야를 찾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로 몰려든 많은 사람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7-8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 자부하였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례 요한에 대해 어떻게 말했습니까?

 

누가복음 7: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례 요한에 대해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도 않는다며

귀신이 들렸다고 조롱하고 경멸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예수님에 대해서는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며

예수님을 경멸하고 적대시했습니다.

 

누가복음 7:33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먹고 마시지 않는다고 귀신 들렸다 하더니

예수님에 대해서는

너무 잘 먹고 잘 마신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이처럼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은 안 먹는다고 비난하였고

예수님은 너무 잘 먹는다고 비난하였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신앙의 기준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신들만이

유일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만이 유일한 기준이라며

자신들과는 다른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배척하고 비난하는 것을

배타주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대표적인 배타주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죄인이라고 정죄하였던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저들의 진짜 목적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내세운

의인과 죄인의 프레임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질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심으로

배타적인 저들의 종교 질서와 프레임을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목사와 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토록 깨뜨리려고 하셨던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의 잘못을

그대로 또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선을 긋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외면하고,

죄인들을 정죄함으로

자신은 이들과는 다른

의인임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물론 죄와 구별되는 것은 좋습니다.

 

세상과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신실한 신앙의 자세이며 태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자신의 신앙을 든든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비난함으로

자신은 저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함을 가지는 것도 안 됩니다.

 

내가 잘 지킨다고 해서

나는 의인이고 너는 죄인이라는 정죄는

사랑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이웃을

차별하고 혐오하게 만들며

배타주의 신앙을 가지게 합니다.

 

이것은 마치

신체적 장애가 없이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들은 정상인이라고 부르고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비정상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정신적 폭력이자 영적인 폭력입니다.

 

누구라도 다른 사람에 대해

자신이 가진 기준을 가지고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함부로 말해선 안 됩니다.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것은

교만과 어리석음을 넘어서는

매우 악한 일입니다.

 

나와 다른 믿음이나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심지어는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배타주의 신앙은

 

결코, 예수님의 방식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고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와 다른 교회를 다닌다고,

나와 다른 교단의 신앙을 가졌다고

거부감을 가지고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것 또한

결코,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사셨지만

연약한 자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러하셨기에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실 수 있었고

마침내 그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좀 더 너그럽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혐오하고 미워하고 증오했던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지만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누구의 친구가 되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www.jayoochurch.com

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