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일 월요일가룟 유다의 배신

 

 

마태복음 26:14-16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14 Then one of the Twelve--the one called Judas Iscariot--went to the chief priests

15 and asked, "What are you willing to give me if I hand him over to you?" So they counted out for him thirty silver coins.

16 From then on Judas watched for an opportunity to hand him over.

 

 

1. 사순절 스물아홉 번째 날입니다. 지난 226일부터 시작한 사순절이 이제 두 주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남은 두 주간의 사순절 아침 묵상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하려고 합니다.

 

2. 오늘도 COVID-19의 전염의 위험과 이로 인한 경제적 위기로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 그리고 이 모든 위기를 넉넉히 감당하게 하시는 은혜와 능력이 임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3.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고 시도하였습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종교 기득권을 심각하게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던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가룟 유다가 찾아왔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했고 종교 지도자들은 대가를 지급하였습니다.

 

5.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는 대가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받은 돈은 은 삼십이었습니다. 은 삼십은 로마 화폐로는 120데나리온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따라서 120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넉 달 품삯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6. 물론 120데나리온이 많다고 하면 많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3년 동안이나 함께 먹고 마시며 동고동락했던 스승 예수를 팔아넘길 만큼 엄청나게 큰돈이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7. 그렇다면 도대체 가룟 유다는 왜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겨우 은 삼십이라는 적은 돈에 자신의 스승이었던 예수님을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겼을까요?

 

8.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이 가져온 옥합을 깨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때 여인이 옥합을 깨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향유의 가격은 무려 삼백 데나리온이었습니다.


9. 따라서 가룟 유다가 자신의 스승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넘기는 대가로 받았던 은 삼십은 적은 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스승을 팔아넘길 만큼 대단히 큰돈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10. 많은 목사나 교인이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해 오해하길 그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겼다고 설교하거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 받았다는 은 삼십은 그가 단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11. 만약 가룟 유다가 단순히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기려고 작정을 했다면 단지 은 삼십만 받고 넘겨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더 많은 돈을 요구할 수 있었고 종교 지도자들은 더 많은 돈을 낼 능력이 있었습니다.

 

12. 게다가 가룟 유다가 자신의 스승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넘긴 이유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면 결코 자신이 받은 돈을 성소에 던져두고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3. 마태복음 275절의 말씀입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14. 복음서의 기록과 당시 여러 기록에 의하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보다 복잡한 이유가 있었음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15. 가룟 유다는 젤롯당(Zealot 열심당) 출신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젤롯당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 통치에 대해 무력항쟁으로 저항하였던 극단적인 종교 세력이었습니다.

 

16.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가는 곳마다 놀라운 이적을 보여 주시고 수많은 군중을 모으는 것을 보고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을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하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17. 하지만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희망하고 기대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인기와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스라엘을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하실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18.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이 아니었습니다.

 

19. 예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셨던 것은 모든 인류가 참 구원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가룟 유다의 처지에서는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이 마치 뜬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헛된 꿈으로 여겨졌습니다.

 

20.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제적 구원이 아니라 심령의 가난을 통한 구원을 가르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타락한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을 무너뜨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고난 겪고 죽임당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21. 가룟 유다는 이런 예수님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려는 길과 자신이 기대하고 꿈꾸는 길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22. 만약 가룟 유다가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가시려는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면 결코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일에 앞장서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룟 유다는 지나치게 똑똑했으며 지나칠 정도로 종교적이며 민족적이며 철저한 선민주의자였습니다.

 

23. 예수님이 가시려는 길이 자신이 이루려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재빠르게 눈치챈 가룟 유다는 아마도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졌을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에 사로잡힌 가룟 유다는 자신의 무너진 꿈으로 인해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24. 가룟 유다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자신의 절망과 좌절로 인한 분노가 자신의 희망이었었던 예수님을 배신하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하였던 가룟 유다의 행동은 그의 깊은 절망과 좌절이 만들어 낸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25. 이것은 단지 가룟 유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만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이 무너졌을 때 절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절망하고 좌절하여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충동적인 결정이나 선택을 하게 됩니다.

 

26. 예수님 역시 죽음을 앞에 두고 절망하고 고민하고 슬퍼하셨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절망적인 감정과 고뇌를 다스리신 것입니다.


27.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한 결과 당장의 고난을 피하고 싶은 연약한 인간 예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 예수로서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28. 하지만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오로지 자신 확신과 신념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 깊은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29.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감정에 휘둘리게 되면 실수나 죄를 범하기가 너무나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0.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아니라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신앙은 기복이 심하며 편견과 아집이 강합니다.

 

31. 자신의 감정에 의존하고 자신의 감정을 충족하려는 신앙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는 신앙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신앙으로 성숙할 수 있어야 합니다.


32. 가룟 유다의 배신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영적 도전을 주는 사건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많은 목사와 교인이 예수님을 이용해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고만 합니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3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예수님을 이용해 내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내 믿음을 통해 내 삶과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보며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옵시고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끝까지 붙잡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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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o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