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일 수요일거룩한 낭비

 

마태복음 26:6-13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6 While Jesus was in Bethany in the home of a man known as Simon the Leper,

7 a woman came to him with an alabaster jar of very expensive perfume, which she poured on his head as he was reclining at the table.

8 When the disciples saw this, they were indignant. "Why this waste?" they asked.

9 "This perfume could have been sold at a high price and the money given to the poor."

10 Aware of this, Jesus said to them, "Why are you bothering this woman? She has done a beautiful thing to me.

11 The poor you will always have with you,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12 When she poured this perfume on my body, she did it to prepare me for burial.

13 I tell you the truth, wherever this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1. 사순절 서른한 번째 날입니다. COVID-19의 확산이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안전하고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나병 환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부정한 사람으로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3. 시몬은 이미 나병에서 치유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나병 환자였던 시몬에 대해 아무도 그를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종교적 편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거리낌 없이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르시며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므로 당시 유대인들이 가졌던 잘못된 종교적 편견을 깨뜨리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종교적 편견을 깨뜨리는 행동을 공생애 사역 동안 많이 하셨습니다.

 

5.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을 억압하고 속박하여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만드는 잘못된 종교적 편견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6.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억압하고 속박하는 잘못된 편견을 깨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고 속박하는 더 많은 종교적 편견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향유 한 옥합을 가진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향유를 가져온 여인은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뜨리고는 값비싼 향유를 모두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8. 마가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여인이 가져온 향유 한 옥합의 가격은 삼백 데나리온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까 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연봉에 해당하는 매우 값비싼 향유였습니다.

 

9. 노동자의 연봉에 이르는 값비싼 향유 전부를 예수님 머리 위에 붓자 이것을 본 제자들이 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을 꾸짖습니다. 차라리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지 왜 이런 쓸데없는 낭비를 하냐며 향유를 부은 여인을 나무랍니다.

 

10.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의 행동은 제자들의 처지에서는 충분히 분노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11. 예수님과 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사흘씩이나 굶주린 적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안식일임에도 밀을 잘라 먹다가 바리새인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12. 이처럼 가난했고 먹을 것이 없어 자주 굶주려야 했던 제자들에게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 한 옥합은 그야말로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13. 제자들의 주장처럼 값비싼 향유를 팔아서 예수님 주변에 몰려든 가난한 이웃들은 돕는 데 사용한다면 여인이 가져온 향유가 더욱 가치 있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14. 하지만 여인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몽땅 부어 버림으로써 향유를 철저하게 낭비해 버린 것입니다.

 

15. 제자들은 예수님도 값비싼 향유를 낭비하는 여인을 꾸짖을 것이라 예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저들이 본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저들이 배가 고플 때 오병이어로 저들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시고 저들이 병들거나 귀신들렸을 때 저들을 도우시고 치료하셨기 때문입니다.

 

16.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꾸짖기는커녕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십니다. 오히려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며 여인을 꾸짖는 제자들을 엄히 책망하십니다.

 

17. 마태복음 2610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8. 일부 목사 중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것보다는 종교적 봉사나 헌신을 먼저 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일로 가르치셨다고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설교합니다.

 

19. 값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의 예를 들며 교회를 위한 것이라면 가장 값비싼 것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화려하게 교회 건물을 꾸미거나 고가의 교회 비품 등을 구입하는 등 교회 재정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20.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은 여인의 이야기를 이용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매우 교묘하고 악의적인 왜곡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보다 예수님을 위해 값비싼 향유를 붓는 것이 훨씬 더 값진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21. 예수님께서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신 것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동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22. 예수님께서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신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오직 단 한 번뿐인 유 일회적인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23. 예수님께서는 삼백 데나리온이 넘는 향유 전부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여인의 심정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여인의 행동을 통해 아신 것입니다.

 

24.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모두 부은 것은 파격적인 행위입니다. 파격적이라는 것은 자기 전부를 기울여 쏟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헌신은 합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사건입니다.

 

25. 우리 인생에는 이 여인처럼 합리적이고 약삭빠른 계산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삶과 행동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를 분별하여 자신의 전부를 헌신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더욱 빛날 수 있습니다.

 

26. 신학자 폴 틸리히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를 전부 부은 사건을 거룩한 낭비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계산을 뛰어넘는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려는 파격적인 헌신을 거룩한 낭비라 부른 것입니다.

 

27. 약삭빠른 계산과 투자 대비 효과나 효율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절대로 여인의 파격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파격적인 헌신과 희생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28.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사람은 결코 약삭빠른 계산과 투자 대비 효과인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29. 자신의 손해와 희생을 감사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그래도 여전히 세상을 살만한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30. 학문의 진리, 신앙의 자유, 사회의 정의, 이웃 사랑, 인류의 평화, 그리고 예수를 믿는 믿음이 주는 구원도 은혜를 체험한 사람의 파격적인 헌신과 희생이라는 거룩한 낭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31.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동이 파격적이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사건은 파격을 넘어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충격적인 사건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합리적인 계산을 뛰어넘는 여인의 파격적인 헌신과 희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죽음을 준비하는 거룩한 낭비였던 것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합리적 계산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헌신과 희생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우리에게도 주옵소서.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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