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9-11
9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9 David was afraid of the LORD that day and said, "How can the ark of the LORD ever come to me?"
10 He was not willing to take the ark of the LORD to be with him in the City of David. Instead, he took it aside to the house of Obed-Edom the Gittite.
11 The ark of the LORD remained in the house of Obed-Edom the Gittite for three months, and the LORD blessed him and his entire household.
1. 한 주간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이 충만하길 축복하며 아침 묵상을 시작합니다.
2. 하나님의 궤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 사무엘하 6장의 말씀은 매우 주의해서 읽어야 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3. 무려 70년을 하나님의 궤를 모셔왔던 웃사는 수레에서 떨어지려는 하나님의 궤를 붙잡으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4. 반면에 하나님의 궤를 겨우 삼 개월 동안 모셨던 오벧에돔과 그 집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5. 도대체 왜 똑같은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이런 서로 다른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을까요?
6. 하나님의 궤와 관련해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문제는 웃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입니다. 도대체 웃사는 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갑작스러운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요?
7. 물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8. 하지만 아무리 심판이 하나님께 속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궤를 수십 년간 정성껏 모셔온 웃사를 쳐서 죽게 하신 일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9.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신학자가 웃사가 죽은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력을 발휘했는데, 그 중 반복해서 등장하는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10. 그것은 바로 사람은 하나님의 관리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예배자라는 사실입니다. 주제넘게 사람이 함부로 하나님을 관리하려고 들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11. 오랫동안 하나님의 궤를 모셔왔던 웃사에게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거룩한 상자쯤으로 여긴 것입니다.
12. 제멋대로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실은 것이나, 손을 번쩍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잡은 것은 순간적인 웃사의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13. 이것은 모두 자신이 수십 년간 하나님의 궤를 관리해 왔다는 권위자라는 교만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려는 의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14. 하나님은 왜 웃사를 치셨을까요?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관리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15.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16. 아무리 하나님의 궤와 그 궤를 모신 성전이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의 신앙적 핵심이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궤와 성전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일 뿐 하나님의 궤나 성전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17.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룩한 상자에 넣어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하나님을 인간이 만든 성전이라는 건물 안에 모셔둘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18. 이것은 무소부재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한낱 인간들이 만든 상자나 건물에 모실 수 있다는 우상숭배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19.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질렀던 우상숭배의 실수와 죄를 오늘날 교회가 또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20.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궤와 성전 안에 제한하려고 한 것처럼 교회 역시 하나님을 자신들이 만든 교회라는 건물 안에 제한하려고 했습니다.
21. 교회가 아무리 지난 이천 년 동안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22. 이것은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23.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교회만으로 제한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 하심을 성경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웃사의 잘못과 이스라엘의 죄를 반복하는 일입니다.
24. 중세 교회는 하나님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교회 안에만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최대한 화려하고 아름답게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25. 하나님의 말씀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라틴어 성경만을 고집했습니다. 미사도 교인들이 알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진행했습니다. 심지어 성경도 일반 성도들은 절대로 가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26.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직자를 타락하게 했습니다.
27. 이것은 지금의 개신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신교회가 언제부터 타락하게 됩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게 아니라 관리하려고 할 때부터 교회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28. 목사의 목회 위기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성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기 시작할 때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섬김의 대상이지 관리의 대상이 아닙니다.
29. 이것은 목사에게만 주는 경고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하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30. 어쭙잖게 내가 하나님을 보호하거나 지키려는 교만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31. 웃사는 하나님의 궤를 열심과 정성을 다해 관리했습니다. 그런 웃사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32. 웃사는 열심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궤를 관리만 했지 하나님의 궤를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33. 너무나 많은 교인이 열심과 정성을 다해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34. 하지만 교회와 믿음을 위한 열심과 정성 이전에 반드시 앞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바르게 제대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35. 내 믿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믿음이냐를 분별하여 바르게 믿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 어떠한 열심과 정성보다 항상 앞서야 합니다.
36. 바르게 믿는 것이 열심히 믿는 것보다 언제나 우선순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7.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사이비 이단 교회들이 있습니다.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교리와 신앙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38. 그런데 말도 되지 않는 교리와 신앙에 너무나 많은 교인이 사이비 이단 신앙에 빠져서는 도무지 헤어나지 못합니다.
39. 대부분 사이비 이단 종교나 교회에 빠지는 사람들이 보이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정성과 노력이 지나칠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40.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정성이 대단한 것이 칭찬해야 할 일이지 왜 문제가 될까요?
41.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에 기초하지 않는 열심과 정성은 오히려 진짜 하나님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42.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에 기초하지 않는 열심과 정성은 오히려 하나님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가짜 하나님을 만들어 냅니다.
43. 바리새인이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사울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44. 사울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열정으로 그가 열심히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45.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열정이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일,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46. 오늘날 교회가 회심 이전의 사울과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자신이 가진 생각과 얄팍한 성경 지식이나 교리 지식으로 하나님을 관리하거나 보호하려는 교만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관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바라는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