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 화요일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사도행전 3:11-16(개역개정, NIV)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1 While the beggar held on to Peter and John, all the people were astonished and came running to them in the place called Solomon's Colonnade.

12 When Peter saw this, he said to them: "Men of Israel, why does this surprise you? Why do you stare at us as if by our own power or godliness we had made this man walk?

13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the God of our fathers, has glorified his servant Jesus. You handed him over to be killed, and you disowned him before Pilate, though he had decided to let him go.

14 You disowned the Holy and Righteous One and asked that a murderer be released to you.

15 You killed the author of life, bu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We are witnesses of this.

16 By faith in the name of Jesus, this man whom you see and know was made strong. It is Jesus' name and the faith that comes through him that has given this complete healing to him, as you can all see.

 

1. 사순절 열여덟 번째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걷고 뛰게 했습니다.

 

3.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성전에서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놀라며 베드로와 요한이 있는 솔로몬 행각으로 몰려왔습니다.

 

4. 베드로는 자신들 주변으로 몰려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걷게 하고 뛰게 한 것은 자신들의 권능이나 경건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5.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걷게 하고 뛰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임을 설교합니다.

 

6.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7. 베드로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말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믿어왔던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8. 베드로는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메시아로 보내신 예수를 영화롭게 하려고 이런 이적을 나타내 보였다고 설교합니다.

 

9. 이처럼 사도들이 행한 모든 이적과 표적은 오로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증명하고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10. 계속되는 베드로는 설교는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충만하여 다른 언어로 말했던 사도들과 따르는 이들을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했던 설교와 비슷합니다.

 

11.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12. 하지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고 자신들이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13. 여기까지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매우 비슷한 내용입니다.

 

14. 하지만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에서 특별히 주목해서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5. 3:16a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6. 여기서 그 이름이란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때 선포했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미합니다.

 

17.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18. 따라서 사도행전 316절 베드로의 설교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낫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를 낫게 했다는 것입니다.

 

19.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었다는 믿음은 대체 누구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20. 베드로의 믿음입니까? 아니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의 믿음입니까?

 

21. 이것은 어느 한 사람만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했던 베드로의 믿음과 베드로의 선포에 순종했던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의 믿음이 합쳐져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22. 만약 베드로의 설교가 여기에서 끝났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놀라운 이적이 베드로와 못 걷는 사람의 믿음이 만들어 낸 결과로 생각할 것입니다.

 

23. 지금 이 사건을 묵상하는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베드로와 못 걷는 사람의 믿음이 합쳐져서 놀라운 이적이 나타난 것이라는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24. 하지만 베드로의 설교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완전히 낫게 했다고 설교합니다.


25. 3:16b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26.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낫게 한 믿음은 베드로의 믿음도 아니고 못 걷는 사람의 믿음도 아닌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고 합니다.

 

27.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28. 베드로와 못 걷는 사람이 가졌던 믿음이 자신들의 확신이나 신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믿음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29.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자원한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까?

 

30.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스승으로 따르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를 제자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31.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함께 지내면서 마침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입니다.

 

32.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었기에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지내면서 비로소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33. 이것은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베드로가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성전에 들어가는 베드로를 부른 것이 아닙니다.

 

34. 주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먼저 찾아와 주셨기에 그가 베드로를 통해 주님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5. 베드로에게도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에게도 메시아이신 주님께서 먼저 찾아와 주셔서 저들을 불러 주셨기에 저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입니다.

 

36. 이것을 신학에서는 선행은총(先行恩寵)이라고 합니다.(Prevenient Grace) 선행은총은 우리 교회가 속한 감리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37.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걷고 뛰게 된 사건을 베드로나 나음을 입은 사람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칫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믿음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38. 실제로 많은 목사나 교인이 하나님을 믿는 자신들의 믿음 차제를 절대시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39. 물론 우리의 믿음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믿음이어야지 자신의 확신이나 신념에서 비롯된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40. 우상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믿는다는 사실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41. 심지어 눈에 보이는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의 믿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믿음보다도 더 간절하고 절실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42. 따라서 우상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진 믿음의 진실성은 믿는 사람의 간절함에 달려 있기보다는 저들이 믿는 대상에 의해 결정됩니다.

 

43. 아무리 간절하고 신실하게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믿는 대상이 우상이거나 사이비 교주라고 한다면 그 믿음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사람을 미혹하는 잘못된 믿음일 뿐입니다.

 

44.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 여시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은 믿음이어야지 우리의 신념이나 확신에서 말미암은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확신이나 신념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유일한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믿음이 내가 가진 확신이나 신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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