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 금요일바나바라 하니

 

사도행전 4:36-37(개역개정, NIV)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36 Joseph, a Levite from Cyprus, whom the apostles called Barnabas (which means Son of Encouragement),

37 sold a field he owned and brought the money and put it at the apostles' feet.

 

1. 사순절 서른아홉 번째 날이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성금요일(Good Friday)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성금요일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초대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는 교인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모든 물건을 서로 나누어 사용하였으며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3. 필요 이상의 재물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밭이나 집을 판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4. 사도들은 저들이 발 앞에 가져다 놓은 돈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5. 4:34-35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6. 예루살렘 교회는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최초로 지킨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7. 15:4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여라. 그러면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너희가 참으로 복을 받을 것이다.

 

8. 공동체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돕는 것은 단지 가난한 사람에게만 좋은 일이 아닙니다.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는 매우 중요한 영적 비결입니다.

 

9. 가난한 자를 도와 가난한 자가 없게 하는 것으로 모든 공동체가 풍요로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분명한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10.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들의 가르침이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하지만 초대 교회에서 일어났던 하나님 나라의 사건을 제멋대로 함부로 왜곡하려고 합니다. 많은 교회가 건축을 위해 교인들에게 무리한 헌금을 요구할 때 이 사건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12. 초대 교회 공동체가 자신들의 밭이나 집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가져다 놓은 이유는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13. 사도행전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저들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저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14.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교회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밭이나 집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놓은 사건을 기록하면서 유독 한 사람의 이름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5. 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16. 사도행전이 소개하고 있는 사람은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 지파 출신의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7. 사도들은 구브로 출신의 요셉에게 바나바라는 그리스식 별명을 지어주고는 요셉 대신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18. 사도들이 지어준 바나바라는 별명은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9. 요셉이라는 사람이 초대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로하는 일을 너무나 잘했기에 사도들이 바나바란 별명을 지어 준 것입니다.

 

20. 사도행전이 자신의 밭이나 집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은 수많은 초대 교회 교인들 가운데 굳이 바나바의 이름만 기록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21. 아마도 이것은 바나바의 헌신과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헌신을 극명하게 대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22.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놓은 바나바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진심에서 우러나온 헌신이며 희생이었습니다.

 

23. 하지만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바나바처럼 자신들도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밭을 판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24. 하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밭을 판 돈의 얼마를 숨기고 조금만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25. 바나바와 아니니아 부부는 초대 교회를 위해 얼핏 비슷하게 보이는 헌신을 했지만, 그 의도와 그 과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26.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순히 드러난 결과나 행동이 아님을 또다시 분명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27.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의도와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느냐를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결과나 행위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8.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금요일(Good Friday)이며 지난 217일부터 시작하였던 사순절의 모든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29. 우리는 지난 사십일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사순절과 고난주간으로 보냈습니다.

 

30.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신앙은 고난을 면제받거나 피하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31. 오히려 고난을 외면하고 피하며 살았던 사람이 자발적으로 고난의 길을 자원하여 그 길을 담대하게 갈 수 있도록 만듭니다.

 

32.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33.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했습니다.

 

34.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이웃의 아픔을,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과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5. 사순절을 지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것은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며 함께 아파해 주는 것입니다.

 

36.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길을 가셨을 때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셨습니다.

 

37.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타인의 상처나 아픔에 함께 공감하므로 타인의 상처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38. 사순절을 보내며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39. 어려움을 당해 슬퍼하는 사람,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사람,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40.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합니다.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도 파괴합니다.

 

41.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불편하게 합니다. 하지만, 잘 치유된 상처는 아름다우며, 깊은 상처로부터 치유 받은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이 됩니다.

 

42. 상처를 당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잘 치유되고 나면 상처를 받기 이전에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격과 성품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43. 상처 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살리신 것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며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44. 다음 주 아침 묵상은 한 주간 쉽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의 긴 여정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보내신 모든 분들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이 초대 교회 바나바처럼 공동체와 이웃의 상처와 아픔을 잘 위로하고 격려하는 위로자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부활의 소망으로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 공포와 억압, 그리고 절망을 능히 이겨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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