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금요일–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도행전 9:26-27 (개역개정, NIV)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6 When he came to Jerusalem, he tried to join the disciples, but they were all afraid of him, not believing that he really was a disciple.
27 But Barnabas took him and brought him to the apostles. He told them how Saul on his journey had seen the Lord and that the Lord had spoken to him, and how in Damascus he had preached fearlessly in the name of Jesus.
1. 한 주간도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 되시길 바라며 금요일 아침 묵상 시작합니다.
2.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다메섹으로 떠났던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3. 다메섹으로 갔던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4.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렸던 삼 년이란 시간 동안 사울에게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5. 사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다메섹으로 갔던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기 위함이었습니다.
6. 하지만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예루살렘을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7.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던 사울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파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8.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사도행전은 기록하기를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을 만나 그들과 교제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9. 행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10. 여기서 제자들은 공생애 사역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11. 사도행전에서 제자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신실한 성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12.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대해서는 일반 제자들과 구별하여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13. 또한, 사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다는 것은 단순히 인사를 나누고 교제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14. 사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과 합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동역자가 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15.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은 사울이 회심하고 거듭났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16. 예루살렘 교회 제자들이 알고 있던 사울은 너무나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완전히 멸절하려고 집마다 찾아다니며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들였던 자였습니다.
17. 행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18. 예루살렘 교회 제자들이 알고 있던 사울은 너무나 지독한 박해자였기에 그의 회심과 거듭남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19. 예루살렘 교회 제자들은 사울이 거짓으로 예수님을 믿는 척하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접근한 것으로 의심한 것입니다.
20. 그런데 사울의 회심을 의심하며 두려워하는 예루살렘 교회 제자들에게 그에 대한 두려움과 의혹을 해결해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21. 행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2. 사울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 제자들의 두려움과 의심을 해결해 준 사람은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23. 사울을 변호해 주었던 바나바의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로 불렀습니다.
24.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25. 요셉을 사도들이 바나바라 불렀던 이유는 그가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을 잘했기에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바나바로 부른 것입니다.
26. 바나바는 자신이 직접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울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27.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과 사도들에게서 신임을 받았던 바나바의 변호로 사울에 대한 모든 두려움과 불신이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28. 바나바로 인해 사울은 마침내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의 인정을 받고 함께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29. 만약 바나바의 변호가 없었다면 예수 믿는 자를 박해했던 사울의 전력으로 인해 그는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에게 동역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30. 그렇다면 예루살렘 제자들과 사도들은 왜 회심했다고 하는 사울의 말은 믿지 않고 바나바의 말은 전적으로 신뢰한 것일까요?
31.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이 두 사람이 살아왔던 삶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32. 사울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은 예루살렘 교회를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33. 교회를 파괴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갔던 사울이 삼 년 만에 나타나서는 자신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을 믿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34. 반면에 바나바가 살아왔던 삶은 사울과는 달리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과 사도들 모두에게 인정받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35. 사도들이 사울을 변호해 주는 바나바의 말을 신뢰하고 사울을 동역자로 받아들인 것은 오로지 바나바의 신실한 삶의 결과였습니다.
36. 만약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과 사도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다면 그가 아무리 사울을 변호하고 옹호한다고 해도 사울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37.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38. 자신이 하는 말의 가치와 무게는 자신이 살아온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9. 평소 진실한 삶을 사는 사람의 말은 쉽게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진실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습니다.
40.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지만 복음을 전파하는 말 이전에 복음을 살아왔던 진실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41. 내 말에 아무런 무게나 영향력이 없는 것은 지나온 내 삶이 진실하지도 누군가에게 덕을 끼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42. 우리가 정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최고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43. 그런데 복음 전파의 사명은 단순히 “예수 믿으세요!” “우리 교회 나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44. 요즘 이런 말을 듣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45. 지금까지 복음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나의 삶이 내가 전하려는 복음에 담겨있지 않으면 그 어떤 말로도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복음 전파와 증거는 단순히 사람의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내가 믿는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려는 노력이 있을 때에만 내가 전하는 복음에 능력이 나타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유교회 이진우 목사
jayoochurch.com